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전통적으로 대학의 역할은 교육, 연구, 봉사라고 합니다. 교육과 연구 같은 고전적 의미의 역할에는 변화가 없으나 봉사는 시대에 따라 내용의 변화가 있었지요. 2000년대 이전에는 '산·학 협력'의 단계였습니다. 그때까지 대학의 봉사란, 지식과 자원을 지역에 확산시켜 사회·문화·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이었고 산학협력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대학과 기업뿐만 아니라 지자체까지 합세해 '산·학·관 협력 모델(Triple Helix Model)'을 만들어 활성화됐습니다.
최근에는 '산·학·관과 시민 사회 간 협력 모델(Quadruple Helix Model)'이 만들어져 대학의 역할이 더욱 확대됐습니다. 이와 같은 용어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제가 관여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지(地)산학 협력 모델' 또는 '지산학 공동체'라고 명명하고 있지요. 여기서 '지(地)'는 관과 시민 사회를 통합하는 지역이라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하나의 혁신 주체로서 사회 전반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대전에 국한해서 제안하자면, 대전은 19개의 대학을 보유한 장점이 있습니다. 이점을 활용해 '대학도시'를 만들어 대전시(市)와 대학 간의 동반자적 협력관계, 즉 미국 오리건의 포틀랜드市와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CUP(City-University Partnership)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 사회복지, 문화예술, 체육, 상권과 창업 육성, 주거 안정, 원도심 활성화 등 구체적인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것입니다. 시(市)가 할 일의 일부를 전문성과 인력이 구비된 대학이 맡는 것이지요. 이렇게 된다면 19개 대학은 지역 사회의 경제·과학뿐만 아니라 복지·예술·체육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대전시는 시민의 동의를 얻어 1년에 250억씩, 4년간 1000억 정도의 획기적인 예산을 편성해 공모사업으로 추진하되, 철저하고 공정한 평가와 더불어 꼼꼼한 예산 배정을 한다면 투명성이 확보되겠지요. 예산 낭비도 아닙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할 일을 대학이 대행하는 것으로 그 성과는 배가 될 것이며, 요즘 어려움에 처해있는 대학들도 지역에서 핵심적인 행위자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겠지요.
이와 관련해 대학과 지역 사회의 공생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지속 가능 발전 분야에서 시(市)와 공모를 거친 개별 대학 간의 공식적인 협정을 체결하고, 둘째 이와 같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위에서도 얘기한 시예산의 제공이 필요하며, 셋째 핵심적인 지속 가능성 의제에 대학별로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마지막으로 양 기관 간의 상호 인력 교환이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대학은 지식 생산자를 넘어 도시와 동반자 관계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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