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1일은 B747의 새로운 시대가 닫힌 날이다. 1970년 첫 정규노선에 투입된 이후 54년여 만에 생산을 종료한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작된 1574번째 항공기는 Atlas Air가 사용할 화물기 747-8F이다. 화물기의 동체 기수 부근의 조그만 스티커가 이것이 마지막으로 생산된 B747이고 2016년 사망한 수석 엔지니어 조 서터를 상기시킬 뿐이다.
B747은 여객기 역사에서 새로운 신세계를 열었다. 이전의 B707은 최대 189명의 승객이 탑승 가능했지만, 점보기는 처음에는 최대 550명을, 나중에는 66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런 B747의 탄생도 가히 신화적이었다. 1965년 어느 날 보잉 CEO 윌리엄 앨런과 팬암 창업자 후안 트립이 연어 낚시를 즐기며 세계 최대 여객기를 만들자는 신사협정이 단초 였으니까. 공식 문서 없이 악수만으로 두 회사의 존망이 걸린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는 것도 전설적이다.
컴퓨터 설계와 가상 3D 모델이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생성되는 작금의 디지털 시대에 1960년대 중반 B747 엔지니어가 직면한 문제들은 상상조차 어렵다. 분명한 것은 팬암이 당시 금시초문의 차세대 광동체 항공기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후안 트립의 기준은 B707이었기에, 그의 아이디어는 간단히 B707 동체 두 개를 쌓는 이층 구조였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1965년 폐기되었다. B747은 원래 대륙 간 승객이 유럽의 콩코드나 미국의 Boeing SST(1971년 폐기) 편으로 초음속 비행을 할 때까지 사용할 임시 항공기로 기획된 것이지만, 이후에도 화물기로 계속 사용되어야 했기에, 화물적재가 용이하게 기수를 위로 접을 수 있도록 조종실을 메인 데크 위로 이동시켰다. 이런 구조로 탄생된 것이 조종실 뒤편의 그 유명한 2층 객실이다. 1966년 4월 13일, 팬암 항공이 5억 2,500만 달러(현재 약 48억 달러) 상당의 B747 25대를 주문하면서 B747 프로그램은 공식 출범했다.
1966년 6월, 보잉은 워싱턴 주 페인 필드 군사공항 근처에 구입한 800에이커 습지대에 구축한 B747 생산 시설은 규모에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당시의 순수 아날로그 도구를 사용한 작업이었음을 상상해보라. 아무튼 B747의 설계 작업과 공장 건설을 병행한 결과, 시제품은 2년 내 비행 예정이었고, 출시일은 1968년 9월 30일이었다. 팬암이 발주 의향서에 서명한 지 3년, 오픈플랜 설계에 합의한 지 28개월 만에 새로운 하늘의 여왕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70년 1월 21일 뉴욕~런던 간 팬암 여객기가 첫 운항을 한 이후 1975년 이미 1억 번째 승객을 맞았고, 1993년 10월 1000번째 747기를 인도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렇다. 시드니 셸던의 소설 제목마냥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B747도 숱한 기록과 새로운 항공시대를 예고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맞이했다. 대전의 2호선은 계획 이후 사반세기를 넘겼다. 한때 과학도시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전의 위상은 신기루처럼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갈고 다진 흑토에 씨앗을 뿌리는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대전도 항공 신세계를 개척한 B747의 아버지 조 서터와 같은 도전과 의지로 재무장한다면, 그게 항공우주산업을 품은 과학도시이든 한국 최초의 트램도시이든 신기루가 아닌 신세계로 승화될 때 그 결실은 영원히 지속 가능한 발전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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