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뜬지 한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계획은 힘을 잃었다. 익숙한 패배감이다. 다이어리를 잘못 펼쳐 버킷리스트를 마주하게 되면 넘치는 열정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불과 한 달 전의 내가 쓴 것인데도 낯설다. 찬찬히 읽다 보면 건강하고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멋쟁이 한명이 그려진다. 매년 올리는 다짐 외에 좀 특별한 항목이 눈에 띈다. '환경을 생각하는 삶 살기'.
기후위기는 더이상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에만 유례없는 폭우로 수많은 사람들의 터전이 잠겼다. 과장이 아닌 진짜 북극추위를 겪었다. 전남도에선 50여년 만의 가뭄으로 일부 지역에선 기약 없는 제한급수와 단수가 내려졌다. 이대로라면 경험해보지 못한 기록적인 위기가 더 자주 닥칠 것을 안다. 안다는 것은 괴롭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든다.
다행히 인터넷 세상에서 환경보호를 결심한 초보자들을 격려하는 고수들의 실천 조언들이 있다. 하루 한 끼는 비건 시단으로 먹기 부터 메일함 정리하기, 텀블러 사용 등 탄소배출을 줄일 방법은 다양했다.
어떤 날은 열정에 불타서 이것저것을 시도했지만 어떤 날은 까맣게 잊고 되는대로 살았다. 그 행동의 간극 때문에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괜히 시작해서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사서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뉴스를 봤다. 2021년에 포스코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환경 활동가 4명이 1분간 기후위기에 대한 발언을 하고 끌려 나가는 사건이 있었고 각 벌금 300만원을 약식명령 받았다. 활동가들은 정식재판을 요청했다.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는 예상을 엎고 바로 혐의를 인정했다. 대신 최후변론 1시간을 확보해 법정에서 기후위기 관련 동영상을 틀었다. 1월 결과가 나왔는데 벌금이 3분의 1에서 3분의 2까지 줄었다. 활동가들의 행동 정당성과 합리성이 일부 인정이 된 것이다.
어떤 시작은 목적지를 밝히는 일이다. 그래서 작심삼일일지라도 개인의 발전에 이롭다.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목표에 가까워질 것이다. 나와 우리의 모든 서툰 시작에, 그 여정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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