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의 글, 즉 칼럼을 쓴 주인공은 어쨌든 대졸 출신이다. 반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국졸'(國卒)에 머물러 있다. 물론 중간에 3년제 사이버대학과 작년에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CEO 과정을 이수했지만 이를 학력으로 등가(等價)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회적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강조코자 하는 것은 나는 학력이 겨우 '국졸'임에도 대학, 아니 대학원까지 졸업 후 박사학위까지 받은 대학교수급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회귀한다.
당시 나는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였다. 하지만 앞날이 장맛철의 먹구름만큼이나 그 전도(前途)가 무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초등학교 졸업만이 학력의 전부인 명실상부한 무지렁이였기 때문이다.
그같이 불학(不學)의 내 처지에 맞는 직업으론 새벽마다 공사장에 나가 막일을 하는 게 제격이었다. 재수가 좋으면 오전의 공사만으로도 일이 끝나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고 공사장 일의 대부분은 땅거미가 완전히 져야만 비로소 끝나는 목수와 미장의 보조(건축현장에선 이를 일제용어의 잔재인 '뒤모도'라 불렀다)일이 태반이었다.
공사장에서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마치고 귀가하자면 피곤이 마음속 가득까지 물먹은 솜으로 들어차곤 했다. 그런데 공사장의 일은 자주 있는 편도 아니었고 또한 비가 오는 날엔 공사가 원천적으로 일시 중단되는, 이른바 '데마찌'라는 또 다른 일제 용어의 공(空) 치는 날이었다.
그러니 당최 돈벌이로선 적절치 못했다. 또한 한 달에 고작 열흘 남짓 일해서는 편부와 먹고살기에도 버거웠다. '다른 직장을 찾아보자!' 며칠간 전신주와 벽에 붙은 구인광고를 샅샅이 훑어 마침내 눈에 쏙 들어오는 직장을 하나 발견했다.
<학력 제한 없음! 00 주식회사 창립사원 모집…> 어떠한 직장이든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을 원하였기에 나와 같은 무지렁이는 아예 서류조차 제출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직장은 나와 같은 불학의 필부에게도 문호를 열어 주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이력서를 한 장 써 들고 그 직장을 찾아갔다. 나를 면담한 소장은 "우린 학력보단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이니 열심히 해 보시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며칠 뒤 입사 동기 일곱 명과 함께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이어 그 회사서 만든 영어 회화 교재와 테이프 견본을 받아 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하고 주문을 받는 세일즈맨의 길로 접어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일즈맨의 길은 가시밭길 험산준령을 넘는 역경이었다. 잡상인 취급을 하며 문전 박대하는 이가 부지기수였으며 그 더운 날 냉수 한 잔은커녕 마치 벌레라도 대하는 양 노골적으로 홀대하는 고객을 만나자면 당장에 때려치우고만 싶었다.
그 같은 시련은 담금질해야 더 강한 쇠로 태어나는 쇠붙이처럼 평소의 성정(性情)이 부사리와도 같은 내 오기를 더욱 자극했다. '어쨌든 끝까지 가 보자!' 밤마다 친구를 찾아가 영어를 배웠으며 서점에 가서 마케팅에 관한 책을 사 읽었다.
회사에서의 조회(朝會)때 만날 소장이 열강하는 '많이 파는 노하우' 역시도 일일이 기록을 하며 뇌리에 입력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입사 동기들이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지만 나는 톱 세일즈맨으로 부상하였고 이어 주임과 소장으로도 거푸 승진하게 되었다.
소장으로 근무할 당시의 에피소드이다. 하루는 회식을 하는데 대졸 사원 하나가 물었다. "박식하신 소장님의 조회는 늘 감동입니다. 근데 소장님은 어디 대학을 나오셨나요?" 순간 숨이 탁 멎는 것 같았다.
'대학은 무슨 얼어 죽을 대학?' 그렇지만 굳이 속일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이실직고했다. "나는 고작 국졸(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기에)의 학력이고 나머지는 독학으로 공백을 메웠습니다."
그러자 직원들 모두가 놀라는 듯한 표정이 되더니 하지만 학력 콤플렉스를 실력으로 극복하고 자신들의 상관이 된 나를 우러러보는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현재 다수의 언론에 칼럼을 싣고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 하루에 한 건의 기사(칼럼)를 써야 한다. 상식이겠지만 당연히 다른 언론매체와 중복이 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자신 있다. 20년 이상 글을 써온 내공 때문이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사랑이 무서워>에서 엄마 김수미가 아들 임창정에게 "이 XX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와"라고 하여 관객들에게 박장대소의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키보드 앞에만 앉으면 글이 자동으로 나온다. 만 권의 책을 읽은 덕분의 어떤 반대급부(反對給付)이다. 폴리텍대학을 나왔다고 부끄러워할 거 없다. 나처럼 중학교조차 문턱을 넘지 못한 무지렁이도 칼럼을 쓴다.
문제는 학력보다 실력이다. 뭐든 열심히 하면 결국엔 세상도 인정한다. 빠르면 이번 달에 나의 다섯 번째 저서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가 출간된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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