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어떤 반대급부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어떤 반대급부

열심히 하면 세상도 인정한다

  • 승인 2023-02-0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늘 자 모 신문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글을 봤다. 공고 나와서 창원 폴리텍대학을 졸업한 글쓴이의 "소위 '지잡대' 출신이라서 쪽팔렸었다"는 에피소드의 피력이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학력보다 실력인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의 글, 즉 칼럼을 쓴 주인공은 어쨌든 대졸 출신이다. 반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국졸'(國卒)에 머물러 있다. 물론 중간에 3년제 사이버대학과 작년에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CEO 과정을 이수했지만 이를 학력으로 등가(等價)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회적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강조코자 하는 것은 나는 학력이 겨우 '국졸'임에도 대학, 아니 대학원까지 졸업 후 박사학위까지 받은 대학교수급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회귀한다.

당시 나는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였다. 하지만 앞날이 장맛철의 먹구름만큼이나 그 전도(前途)가 무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초등학교 졸업만이 학력의 전부인 명실상부한 무지렁이였기 때문이다.



그같이 불학(不學)의 내 처지에 맞는 직업으론 새벽마다 공사장에 나가 막일을 하는 게 제격이었다. 재수가 좋으면 오전의 공사만으로도 일이 끝나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고 공사장 일의 대부분은 땅거미가 완전히 져야만 비로소 끝나는 목수와 미장의 보조(건축현장에선 이를 일제용어의 잔재인 '뒤모도'라 불렀다)일이 태반이었다.

공사장에서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마치고 귀가하자면 피곤이 마음속 가득까지 물먹은 솜으로 들어차곤 했다. 그런데 공사장의 일은 자주 있는 편도 아니었고 또한 비가 오는 날엔 공사가 원천적으로 일시 중단되는, 이른바 '데마찌'라는 또 다른 일제 용어의 공(空) 치는 날이었다.

그러니 당최 돈벌이로선 적절치 못했다. 또한 한 달에 고작 열흘 남짓 일해서는 편부와 먹고살기에도 버거웠다. '다른 직장을 찾아보자!' 며칠간 전신주와 벽에 붙은 구인광고를 샅샅이 훑어 마침내 눈에 쏙 들어오는 직장을 하나 발견했다.

<학력 제한 없음! 00 주식회사 창립사원 모집…> 어떠한 직장이든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을 원하였기에 나와 같은 무지렁이는 아예 서류조차 제출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직장은 나와 같은 불학의 필부에게도 문호를 열어 주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이력서를 한 장 써 들고 그 직장을 찾아갔다. 나를 면담한 소장은 "우린 학력보단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이니 열심히 해 보시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며칠 뒤 입사 동기 일곱 명과 함께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이어 그 회사서 만든 영어 회화 교재와 테이프 견본을 받아 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하고 주문을 받는 세일즈맨의 길로 접어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일즈맨의 길은 가시밭길 험산준령을 넘는 역경이었다. 잡상인 취급을 하며 문전 박대하는 이가 부지기수였으며 그 더운 날 냉수 한 잔은커녕 마치 벌레라도 대하는 양 노골적으로 홀대하는 고객을 만나자면 당장에 때려치우고만 싶었다.

그 같은 시련은 담금질해야 더 강한 쇠로 태어나는 쇠붙이처럼 평소의 성정(性情)이 부사리와도 같은 내 오기를 더욱 자극했다. '어쨌든 끝까지 가 보자!' 밤마다 친구를 찾아가 영어를 배웠으며 서점에 가서 마케팅에 관한 책을 사 읽었다.

회사에서의 조회(朝會)때 만날 소장이 열강하는 '많이 파는 노하우' 역시도 일일이 기록을 하며 뇌리에 입력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입사 동기들이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지만 나는 톱 세일즈맨으로 부상하였고 이어 주임과 소장으로도 거푸 승진하게 되었다.

소장으로 근무할 당시의 에피소드이다. 하루는 회식을 하는데 대졸 사원 하나가 물었다. "박식하신 소장님의 조회는 늘 감동입니다. 근데 소장님은 어디 대학을 나오셨나요?" 순간 숨이 탁 멎는 것 같았다.

'대학은 무슨 얼어 죽을 대학?' 그렇지만 굳이 속일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이실직고했다. "나는 고작 국졸(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기에)의 학력이고 나머지는 독학으로 공백을 메웠습니다."

그러자 직원들 모두가 놀라는 듯한 표정이 되더니 하지만 학력 콤플렉스를 실력으로 극복하고 자신들의 상관이 된 나를 우러러보는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현재 다수의 언론에 칼럼을 싣고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 하루에 한 건의 기사(칼럼)를 써야 한다. 상식이겠지만 당연히 다른 언론매체와 중복이 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자신 있다. 20년 이상 글을 써온 내공 때문이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사랑이 무서워>에서 엄마 김수미가 아들 임창정에게 "이 XX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와"라고 하여 관객들에게 박장대소의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키보드 앞에만 앉으면 글이 자동으로 나온다. 만 권의 책을 읽은 덕분의 어떤 반대급부(反對給付)이다. 폴리텍대학을 나왔다고 부끄러워할 거 없다. 나처럼 중학교조차 문턱을 넘지 못한 무지렁이도 칼럼을 쓴다.

문제는 학력보다 실력이다. 뭐든 열심히 하면 결국엔 세상도 인정한다. 빠르면 이번 달에 나의 다섯 번째 저서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가 출간된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홍경석 세창밀시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 부석사 불상 친견법회, 한일 학술교류 계기로"
  2. 대전 학교 내 성비위 난무하는데… 교사 성 관련 연수는 연 1회 그쳐
  3. [입찰 정보] '테미고개·서대전육교 지하화'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12공구 공고
  4. 2023년 대전·세종·충남 전문대·대학·대학원 졸업생 취업률 전년比 하락
  5.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1. [사설] '대한민국 문화도시' 날개 달았다
  2. [사설] 교육 현장 '석면 제로화' 차질 없어야
  3.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4. 대전 경제기관·단체장 연말연시 인사이동 잇따라
  5. 대전 동구, 축제로 지역 이름 알리고 경제 활성화 기여까지

헤드라인 뉴스


韓 권한대행도 탄핵… 대통령·국무총리 탄핵 사상 초유

韓 권한대행도 탄핵… 대통령·국무총리 탄핵 사상 초유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탄핵 됐다.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마저 직무가 정지되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순서에 따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국회가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무기명 투표를 진행한 결과, ‘국무총리(한덕수) 탄핵 소추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192명이 참석해 찬성 192표로 가결됐다. 표결에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안건은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소추안이다. 그러므로 헌법 제65조2항에 따라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밝혔다...

세종시 `주택 특공` 한계...수도권 인구 유입 정체
세종시 '주택 특공' 한계...수도권 인구 유입 정체

현행 세종시 주택 특별공급 제도가 수도권 인구 유입 효과를 확대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오던 이전 기관 종사자 특별공급 제도가 2021년 5월 전면 폐지되면서다. 문재인 전 정부는 수도권에서 촉발된 투기 논란과 관세평가분류원 특공 사태 등에 직격탄을 맞고, 앞뒤 안 가린 결정으로 성난 민심을 달랬다.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를 본 이들이 적잖다. 중앙행정기관에선 행정안전부 등의 공직자들부터 2027년 제도 일몰 시점까지 특별공급권을 가지고 있던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고개를 떨궜다. 세종시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같..

AI 디지털 교과서 논란...전국 시도교육감 엇박자
AI 디지털 교과서 논란...전국 시도교육감 엇박자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명의의 건의문이 17개 시·도 간 입장 조율 없이 제출돼 일부 지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12월 26일 이와 관련한 성명을 통해 "우리 교육청은 그동안 AI 디지털 교과서의 현장 도입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해왔다. 시범 운영을 거쳐 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라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란 입장으로 서두를 건넸다. 이어 12월 24일 교육감협의회 명의의 건의문이 지역 교육계와 협의 없이 국회에 제출된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독감과 폐렴 함께 예방해 주세요’ ‘독감과 폐렴 함께 예방해 주세요’

  •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 즐거운 성탄절 즐거운 성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