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교언영색은 구분이 어렵다. 내면이 빈약할수록 겉치레를 우선한다.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가식적 호의에 곧잘 넘어간다. 뿐인가? 상대가 지향하는 목표의 선악 구분은 더욱 어렵다. 수렁에 깊이 빠진 뒤에야 알게 된다.
가끔 도둑도 도가 있을까? 이웃이 있을까? 친구가 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당연히 있다. 목표가 악일 뿐,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역시나 친구가 있어야 한다.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 관계에 앞서 필요한 것이 지인용 또는 지덕체라는 이상적 품성이다.
누구나 한번 쯤 의문을 갖는 모양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도척(盜?)의 부하가 도척에게 묻는다. "도적질에 도가 있습니까?" 도척의 대답이다.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 감추어진 것을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다. 늦게 나오는 것이 의(義)이며,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지(知)이다. 도둑질 한 물건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다."
도척이 공자를 나무라기도 한다. "노나라의 위선자 공구가 네놈이로구나. 너는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밥을 먹고, 옷감도 짜지 않으면서 옷을 입고, 함부로 입을 놀려 시비거리나 만들어 천하의 임금들을 우롱하고, 선비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게 하며, 제멋대로 효제라는 것을 만들어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구나. 당장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간을 꺼내 점심 반찬에 보태리라."(장자, 조수형외 공저)
일견 바른 말처럼 들린다. 공자나 유가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것이라 보지만, 도척관련 내용이 천박하다하여 후세 사람의 위작(僞作)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거나 대단한 풍자요 요설이다. 한편, 방향설정이 잘 못 되어 있을 뿐, 사회생활에 필요한 덕목 아닌가? 사회 구성의 원리라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기에 9천에 이르는 무리가 따랐으리라.
성(聖)은 사리에 통달한 덕과 지혜가 뛰어남이다. 한자(漢字)가 옆 사람 말에 귀 쫑긋 세우고 경청하는 형상이기도 하다. 의(義)는 유가에서 일컫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오상(五常, 仁義禮智信) 또는 사덕(仁義禮智)의 하나로 올바름과 의로움이다. 지인용은 지난주에 언급하였다. 가엽게 여기고(惻隱之心), 부끄러움을 알며(羞惡之心), 배려하고(辭讓之心) 분별할 줄 아는(是非之心) 우리 본성이기도 하다.
다만, 지향점이 없다. 가장 중요한 이상이 없다. 사회 파괴, 미래 말살 까지 갈 것도 없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 주진 않아야 한다. 성스러운 척 호도하지도 말아야 한다.
누구나 험한 일, 궂은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를 앞장서 실행 하는 것이 용이라 주장한다. 선을 향한 굳세고 씩씩함이야 얼마나 좋은가? 이 역시 방향설정이 잘 못되면 무용지물이다. 나아가 악(惡)이 된다. 모두 칼과 같아 용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악으로 향한 용기나 만용(蠻勇)은 용기가 아니다. 무모함이나 허장성세(虛張聲勢) 역시 용기라 하지 않는다.
불의에 대한 저항,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한 결연한 의지와 자기희생, 인간 한계와 미래, 선에 대한 도전 등이 진정한 용기 아닐까? 하나 더 있다. 잘 못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잘 못 알았던 일 역시 깨부수는 것이다. 여러 차례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언급하였다. 지난 연말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잘못인줄 알면서 고치지 않는 것,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잘못 된 사고의 틀에 갇혀있으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이 또한 용기 없음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오고 만들어 준 것일지라도 다르지 않다.
거짓과 사악함으로 점철된 사람이 수차례 의원이나 선출직에 당선된다. 둘러보니 그런 사례가 다수 보인다. 대놓고 요설로 혼돈 시킨다. 무슨 전략이라 운운한다. 애당초 방향설정이 그른, 그런 지혜는 없으니 만 못하다. 거짓에 부화뇌동하여 용기랍시고 덩달아 짖어대는 이도 다수다. 그야말로 도척지견(盜?之犬)이다. 도척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굴종하고 짖어댄다. 반(反)하는 사람은 무조건 물고 뜯는다. 주인 외에는 아예 염두에 없어 짖어댄다는 걸견폐요(桀犬吠堯), 척구폐요(?狗吠堯)와 같은 말이요, 그런 무리다.
개나 주인이나 탈피의 순간이 빠른 만큼 자신도 사회도 더 성장한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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