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나 경제부 기자. |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순 없다. 민간 소비가 늘어나야 경제가 성장하는 소비 자본주의에서 개인은 '소비하는 주체'로 여겨진다. 도시에 살면서 집 밖에 나가는 순간, 가게 간판·메뉴 소개·전단 등에 노출되며 대중교통을 탈 때도 정류장과 안내음 상업 광고를 피할 수 없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산책으로 도리어 어지러워질 정도다. 기분전환 켠 SNS에서도 해외여행 브이로그, 대량 구매 후 상품을 품평하는 영상인 '하울', 고급 식당·명품 인증사진 등이 즐비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소비를 하면 행복해질 것이고 요즘에 이런 게 유행이라 안 하면 뒤처질 것'이라고 암시하는 듯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인 '소확행'이 유행하며 지출을 합리화하는 풍조도 만들어졌다.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2년마다 조사하는 '2020년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39.9%) 만이 현재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금융 태도'에서 OECD가 제시한 최소목표 점수를 달성했다. 금융태도 점수는 지난 조사보다 61.3점에서 60.1점으로 하락했다. 금융 지식이 65.7점에서 73.2점으로, 금융행위가 59.9점에서 65.5점으로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 태도 미숙은 금융 행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금융행위는 재무계획과 관리, 정보에 입각한 금융 상품 선택 등 금융과 관련해 소비자가 하는 행위다. 장기 재무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성인도 43.5%로 저조했다.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하는 청년이 34.2%로 그 반대(26.0%)보다 8.2% 높았다. 소비를 선호하는 청년층 금융행위 점수는 60.1점으로 저축을 좋아하는 청년층의 점수(63.7)보다 저조했다. 소비를 중시하는 대학생 10명 중 8명이 OECD 금융행위 최소 목표 점수에 미달했다.
상업광고 못지 않게 '소비하지 않는 즐거움'도 유행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소비는 환경와 정신 건강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각종 미니멀리즘 서적에선 집을 비우고 물건을 덜 가지면 행복해진다는데, 혼자선 당최 실천하기 어렵다. 오늘도 택배 알림 문자로 시끄럽다. 지자체는 기업의 수입을 늘려 세수를 확보하는 데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독립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는 데 힘써야 할 의무도 있다. 고물가·고금리 시대엔 더욱 그렇다.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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