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잘 알다시피,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은 경제적 축과 문화적 축에 따라 사회가 크게 보면 네 개의 집단으로 나눠져 있다. 우선 경제적 축에 따라 기업가 및 자산가 집단과 노동자 및 서민 집단으로 나눌 수 있고, 다음으로 이 두 집단을 문화적 축에 따라 집단주의적 성향의 집단과 개인주의적 성향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네 집단은 각자 추구하고자 하는 이익과 가치가 정치적, 사회적 제도와 그 운영에 달려 있다고 보고, 공정한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상식대로 운영하는 대표자 내지 대리인을 뽑고자 한다. 이러한 메카니즘 하에서 일련의 선거·정당·의회 정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과정이 왜곡되고 굴절되는 경우, 사회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며 통합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정당과 정부에 있는 대표자나 대리인이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현상이 횡행한다. 이럴 경우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각종 혐오와 배제가 위험 수위에 다다를 수 있다.
대체로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러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관용과 타협의 정치문화의 조성,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선, 대표성과 비례성이 구비되는 선거제도로의 개혁, 자질을 갖춘 인물을 공천하는 정당개혁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 정치문화와 정당공천의 개선은 시민들과 당원들의 의식이 변화될 때 가능하며, 대통령제의 개선은 개헌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단기간에 가능한 해법은 선거제도의 개혁이 유일하다. 이 사안에 대해 현재 국회의 여러 그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백가쟁명식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여기에 연초 대통령이 한 선거구에 2~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촉발된 측면도 없지 않다.
언론에 따르면, 선거제도의 논의가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국회 개정안은 현행 소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골격을 건들지 못한 채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선에서 입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전망이 일리가 있는 것은 현재 여·야 간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없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그 변경은 여·야 간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상대방에 대한 괴멸적 증오와 원색적 비방 속에서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물론 요행수가 있을 수 있지만, 여·야 간의 상생과 협치가 없는 한 난망하다.
선거제도의 논의에서 현행 선거법만 개정하면 개혁이 마무리된다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은 5년 간에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세 차례의 선거, 즉 1년 8개월 마다 선거를 치루는 식으로 다른 선진국가들에 비해 선거 횟수가 많다. 선거 횟수가 많다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늘상 선거를 의식한 소모적 갈등이 지속되고, 인기영합적인 비효율이 만연한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쉽사리 개헌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차제에 총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루기 위한 지방자치법의 개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정치의 양극화를 완충할 수 있도록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낼 수 있는 지역정당을 제도화하기 위한 정당법의 개정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개혁은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행위자들 간의 합의뿐만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에게는 각성과 분발이, 주권자인 시민에게는 관심과 공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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