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영수증 한 장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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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영수증 한 장의 위력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01-2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는 주변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이웃집에 사는 순이 엄마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 있지만, 사업으로 돈을 벌려는 기업가들도 있다. 또 한편에는 권력가나 정치가로 권력도, 명성도, 누려보려는 야심가도 있다. 이것도 아니면, 가지고 있는 끼를 발휘해서 가수나 코미디언, 개그맨, 기타 연예인으로 꿈을 펼쳐 보려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나름대로의 꿈을 키워 돈도 벌고 권력도, 명성도, 누리려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끼의 발휘로 재능을 떨쳐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꿈꾸고 목표로 하는 일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들이 성공하여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정직성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정직성이나 진실성이 없으면, 하는 일 자체가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어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힘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흘린 땀 방울방울 그 모두가 웃으며 거둘 수 있는 노작의 열매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을 한 사람의 재능이나 됨됨이, 정직성, 진실성,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결과가 도출되는데, 특히 그 일을 한 사람의 정직성 유무에 따라 명암이 결정된다 하겠다. 이와 같이 인간의 정직성은 그가 인정받고 못 받는 것을 좌우할 만큼 필수불가결의 요체가 된다.

여기 소개하는 일화 하나는 남다른 정직성으로 성공한 본보기가 된다 하겠다.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작은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던 최태섭(1910~1998)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시 바삐 피난을 떠나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피난길에 오를 준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이 빌린 돈을 은행에 갚아야 할 기일이 된 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 은행에 갔다. 전쟁이 나자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지 챙겨서 떠나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반대로 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간 것이다.

"여기 빌린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그는 돈이 든 가방을 열며 은행 직원을 불렀다. 은행 직원은 그를 보고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전쟁 통에 융자장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부의 일부는 부산으로 보냈고, 일부는 분실됐습니다. 돈을 빌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래도 갚으시게요? "

은행 직원의 말에 최태섭 씨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사실, 갚을 돈을 은행 직원에게 준대도 그 돈을 은행 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생각 끝에 돈을 갚기로 결심하고 은행 직원에게 돈을 주고 영수증에 돈 받았다는 도장을 찍어 달라고 했다. 결국 은행 직원은 그의 뜻에 따라 돈을 받고 자신의 인감도장이 찍힌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에서 생선 군납 사업을 시작했다.

공급하는 생선이 신선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자, 그는 원양어선을 구입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나 담보물이 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자신으로선 도저히 배를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의 은행을 찾아가 융자를 신청했다.

그렇지만 은행에서는 전쟁이 막 끝난 뒤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융자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융자 받기를 포기하고 은행 문을 나서려다 문득 자신이 전쟁 중 피난길에 서울서 갚은 빚이 잘 정리되었는지 알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예전에 받은 영수증을 들고 은행 직원을 찾아가 보여주었다.

헌대, 이 영수증 한 장이 최태섭 씨의 모든 상황을 바꿔놓고 말았다. 영수증을 본 은행 직원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바로 당신이군요. 피난 중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정직함은 은행가에서 전설처럼 회자(膾炙)되고 있답니다."

직원은 그를 은행장의 방으로 인도했고 은행장은, "당신처럼 진실하고 정직한 사업가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필요한 금액을 흔쾌히 융자해 주었다. 그는 융자받은 사업 자금과 은행권의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 나갔다.

정직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각과 말, 행동을 거짓 없이 바르게 표현하여 신뢰를 얻는 것이다. 정직의 성품으로 한국의 존경 받는 경영자가 된 그가 바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설립자인 최태섭(崔泰涉?1910~1998) 회장이시다.

전쟁 중에도 그는 정직성으로 신뢰를 얻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려운 시기에도 그는 정직성을 밑천으로 사업을 번창케 하여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것이었다.

급기야 그는 정직성을 밑거름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유리를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은 것이었다.

요즈음도 이런 정직성, 진실성을 가진 기업가나 정치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

현대에도 이런 희귀 보석과 같은 최태섭 회장과 같은 기업가, 정치가가,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나와 주기를 기대해 본다.

삭막해서 살기 어렵다는 요즈음도 자선사업으로 음지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천사도 있다. 한편 나라와 민생을 걱정하는 양심가로서의 정치가도 있다.

또 상도덕을 철저히 지켜가며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발 벗고 뛰는 기업가들도 있다.

허나, 한편에는 국민의 안위나 복지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권력이나 정치 생명 유지를 위해 정직성이나 진실성은 찾아 볼 수 없이 만무방 같이 사는 위인들도 있다.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다 팔아먹었는지, 그 더러운 욕심에 눈이 멀어 후안무치(厚顔無恥)의 행동거지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궁할수록 최선을 다하는 정직성을, 진실성을, 무기로 삼아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 모두가 활짝 웃으며 잘 살 수 있는, 밝고 환한 세상의 문이 열릴 수도 있을 텐데…….

현대의 모든 정치가, 권력가 ,기업가들이, 정직성, 진실성을 비상의 무기로 삼아 환골탈태(換骨奪胎)하기를 주문해 본다. 정직성 진실성을 주춧돌로 한, 양심을 비장의 무기로 삼아, 제2, 제3의 최태섭 회장으로 탈바꿈하기를 청해 본다. 정직성과 양심의 오작동으로 어둠으로 얼룩져 가는 현실을 바로잡아 주었으면 한다.

권력가 , 정치가, 기업가들이여!

정직성을 밑천으로 한 소행으로 보다 밝고 잘 사는 민족국가로 만들 수는 없을까!

정직성과 양심과 상도덕은 안중에도 없어 비정상의 변형된 포물선이 돼가는 그래프를, 우리 모두의 정직성이, 너와 나의 최대공약수가 되어 정상 그래프로 만들 수는 없을까!

아니, 우리 모두의 정직성과 진실성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우리의 양심을 최소공배수로 만들 수는 없을까!

최태섭 회장의 정직성과 진실한 삶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난 '영수증 한 장의 위력'

우리 모두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수증의 위력이 된 정직성이, 우리 모두의 최대공약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정직성과 진실성이 날줄과 씨줄이 된 우리의 양심이 우리 모두의 최소공배수가 돼 사는, 싱글벙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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