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진 교수는 중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남들은 보고 지나간 미물, 가난한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진짜 시인"이라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문학만 조명했던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소외되고 희생된 박 시인의 제 위치를 찾아주고 싶었다"고 이번 작업을 총평했다.
박용래 시인은 충남 강경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대전에서 살았다. 대전 중구 오류동에 푸른감이라는 택호를 직접 붙인 '청시사'에서 대전 그리고 전국의 문인들,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저녁눈', '울타리 밖', '겨울밤', '점묘' 등 수작을 남겼다.
고형진 교수는 박 시인의 시 세계를 탐구하면서 시인의 의외의 면모를 발견했다고 전해왔다.
고 교수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시인 사후 4년에 발간한 '먼 바다'라는 시집이 있다. 생전에 출간된 시를 모아서 낸 건데, 시집 하단에 어디에서 언제 발표한 작품인지 문예지가 명기돼 있다. 이번 작업에서 직접 작품 하나하나를 찾다보니 제목이 다르거나 내용이 다른 시가 다수 발견됐다. 작품을 발표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지만 박 시인처럼 제목을 여러 번 바꾸지는 않는다. 아마도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 작품 하나하나를 수정하고 재탈고를 하는 숭고한 예술의 시 세계를 이어왔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백석 전문가인 고 교수는 박 시인이 백석의 영향을 아주 깊게 받았다고 분석한다. 고 교수는 "보통 박용래 시인이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등 이른바 정통 서정시를 계승했다고 한다. 서정적 가락이 있는 것은 맞지만, 이들과 다른 아주 독특한 회화적인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이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돈과 권력, 명예로부터 떨어져 있는 삶이 가진 아주 숭고한 삶과 정신적 가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박용래 시에도 가난한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미물까지도 보듬는 시인의 모습이다. 박용래와 백석은 닮았다"라고 말했다.
1971년 오류동 청시사 자택에서 박용래 시인. |
고 교수는 순수한 학자의 사명감으로 박용래 세계를 오랫동안 탐구하면서 시인뿐 아니라 대전에도 애정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박용래 시인의 '청시사' 복원은 고 교수에게도 간절한 희망이다.
고 교수는 "박 시인의 대표작 저녁눈이 탄생한 곳이 바로 청시사다. 이곳에서 문인들, 예술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평전에도 나와 있지만 청시사에는 나무와 꽃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곳이 복원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전만이 가진 문학적 산실, 문인들의 사랑방이자 문화유산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쉽다.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다면 좋겠지만 다른 방식일지라도 청시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후대에 계속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용래 시인의 세상을 오랫동안 탐구했던 고형진 교수는 이제 시어의 역사와 시어의 의미 변화 등을 살펴볼 문학적 여행을 앞두고 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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