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眞(참 진) 僞(거짓 위) 視(볼 시) 次(버금 차)
출 처 : 고사성어 속담사전(故事成語 俗談事典), 한국고사성어(韓國故事成語)
비 유 : 실제 눈으로 본 사실도 다를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요즈음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가장 혼란으로 빠져들게 하는 괴물은 가짜뉴스인 것이 틀림없다.
청담동 술집사건을 비롯해 많은 가짜 뉴스들이 연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국민들을 혼란(사실이다, 아니다.)하게 한다.
사실도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또 사실이 허위인양……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분열되고 찢어져 도저히 봉합의 처방조차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막무가 내는 세상이 되었다.
한 스님이 비탈진 계곡을 따라 걷는데 앞서가던 여인이 발을 헛디뎌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뛰어들어 여인을 끌어안고 나왔다.
그런데 여인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물을 잔뜩 들이켠 탓으로 기도(氣道)가 막혀 숨을 쉬지 못했다.
스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자기가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것은 수도인(修道人)으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여인을 눕혀놓고 가슴을 눌러 물은 토하게 하고 입을 빨며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그 덕분에 여인은 '푸우~'하고 숨을 내쉬며 깨어났다.
그때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같은 절의 스님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스님이 여인을 끌어안고 희롱(戱弄)하다니, 여인의 몸에는 손도 대지 말라는 계율(戒律)을 지키지 않는다면 스님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이어서 "평소 정진에만 힘쓰는 줄 알았는데 저럴 수가?……"하고 분개했다. 그리고 사음계(邪淫界)에 빠진 스님은 응당 징계를 받아야 한다며 그길로 달려가 주지 스님에게 고해 바쳤다. 때문에 여인을 구해준 스님은 파계승(破戒僧)으로 낙인이 찍혀 사문(沙門/ 불교에 출가하여 수도에 전념하는 사람)에서 쫓겨났다.
스님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붙들고 나는 결백하다고 일일이 변명하고 다닐 수도 없었다. 스님은 이 일을 통해서 내 눈으로 직접 본 사실도 다르게 인식 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진위시차(眞僞視次)란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그 일을 보는 관점과 시각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옛 선조들은 욕심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도량(度量)이 넓은 사람을 군자(君子) 혹은 대인(大人)이라고 했고, 자기 욕심만 차리고 주위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가짜 뉴스로 잠시 동안만이라도 주위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들이 보내주는 작은 기부금에 만족하여 재미를 느껴서, 자기가 하는 일이 사회나 국가적으로 큰 해악(害惡)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크게 잘한 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러한 사람들이야 말로 국론(國論)을 분열시키고, 상대를 비방하는 풍토를 진작시켜 망국(亡國)의 지름길을 택한 자와 다를 바가 없다.
조선을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도 가짜뉴스를 고집한 간신(奸臣)들의 자기 욕심과 허영(虛榮)때문인 것으로 파악되며, 반대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義)를 고집한 충신(忠臣)들 때문에 국가는 다시 살아났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절실히 느끼고 있다.
능력이 모자라 잘못을 저질렀으면 나중에 잘못을 인정하고 그 죄 값을 받으면 오히려 사람같이 보인다. 그 반대로 자기의 잘못을 끝까지 합리화 하려는 말로 돌려막음질하는 사람을 진정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현명한 선조(先祖)들은 이러한 소인(小人)들에 대하여 경계의 글로 경고하고 있다.
'남을 헤아리려면 먼저 자신을 헤아려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곧)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이 더럽혀져야 한다.(欲量他人 先須自量 傷人之語 還是自傷 含血噴人 先汚其口/ 욕량타인 선수자량 상인지어 환시자상 함혈분인 선오기구)' 강태공(姜太公)의 가르침으로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보인다.
자신을 알고 분수를 아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일이요, 사회와 국가를 살리는 길이다.
많이 배우고 높은 직위에 있는 자들 일수록 더욱 절실히 깨달아 매사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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