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첫 조선인 의사 '김종하' 재조명…3·1운동과 남북분단 '고스란히'

일제시대 첫 조선인 의사 '김종하' 재조명…3·1운동과 남북분단 '고스란히'

김대겸 원장 연구논문 대한의사협회지 등 게재
경성의원 학생 김종하 1919년 3.1운동 후 옥고
대전 중앙의원 떠나 함흥의전 교수로 "고향으로"
"우리역사 격랑 몸으로 새긴 꼿꼿한 근대의사"

  • 승인 2023-01-22 06:00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종하 원장
대전 첫 조선인 개원의사 김종하 사진과 3·1운동 신문조서 그리고 탄원서.  (사진=김대겸 원장 제공)
일제시대 대전에 병원을 세워 환자를 진료한 첫 조선인 의사 김종하(金鐘夏·1900~?) 선생의 생애가 의사 단체를 중심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조선시대 태어나 일제강점 과정을 목격하고 3·1운동과 같은 민족 저항을 실천했으며, 남북분단 대립의 소용돌이에서는 생애가 더 이상 확인되지 않을 만큼 우리역사의 격랑을 몸으로 새긴 몇 안되는 근대의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전시의사회는 1월 발행한 각각의 협회보에 대전 첫 개원의 김종하 선생의 삶을 연구한 논문을 게재했다. 대전 푸른의원 김대겸 원장이 투고한 '조선인 의사 김종하 선생을 찾아서'를 통해서다. 김대겸 원장은 지난 1년간 국사편찬위원회와 조선총독부관보, 경성의전 졸업생 자료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입수한 함흥의전 이력서 등을 연구해 김종하 선생의 삶을 추적해 논문을 발표했다.

김 원장의 논문에 따르면 김종하 선생은 1928년 대전 인동시장 인근에 '중앙의원(中央醫院)'을 개원한 첫 조선인 의사다. 중앙의원 김종하 선생에 대한 신문 기사는 1928년부터 1932년 사이 일간지에 십여 회 게재되고, 1931년 7월 7일자 동아일보에 대전의 운명을 좌우할 대전의 인물 14명 중에 첫 번째로 소개됐다. 기사의 내용은 환자 진료와 취약층 보조금 전달, 좌담회, 구락부 소식, 의원 광고 등에 관한 것이다.

의사협회보
2023년 1월 발행한 대전시의사회보 75주년 특집을 통해 대전 첫 조선인 개원의 김종하 선생을 집중 조명했다. 사진은 중앙의원 홍보전단을 표지로 사용한 대전시의사회보.
김 원장은 논문을 통해 김종하 선생이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때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재판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는 과정을 재구성했다. 3·1운동 당시 경성의전은 가장 많은 학생이 시위운동에 참여해 40명이 체포·구속됐고, 그중 32명이 정식 재판에 회부됐다. 후에 제물포고를 설립한 길영희와 의친왕 망명작전을 시도한 나창헌을 비롯해 김종하가 3·1운동으로 재판을 받았음을 밝혀냈다. 재판에 넘겨진 김종하는 일본인 판사가 '조선의 독립이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라고 묻자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답하며, 독립만세 운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덤덤히 밝힌 당시 신문조서를 김 원장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찾아냈다.



일제시대 신분증 구실을 했던 김종하 선생의 민적등본을 국사편찬위에서 발굴해 그가 1900년 8월 9일 함경남도 함흥군 신창리에서 태어났고, 미군이 입수한 함흥의전 교원 이력서를 통해서는 그가 캐나다 선교사들이 세운 영생소학교와 영생고등보통학교를 다녔음을 확인했다. 또 1924년 경성의전 졸업생 중 일본인과는 별도로 조선인 학생 49명만이 따로 만든 앨범 '형설기념'에서 김종하 선생의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1년 대전 골동품 상점에서 발견된 김종하 선생의 '중앙의원' 홍보전단지를 매입해 대전시립박물관에 기증한 것도 김 원장이었다. 해당 홍보전단지는 가장 오래된 근대 의료광고물로써 대전의 근대사는 물론, 의료사적으로 당시 보건 생활사를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료가 되고 있다.

다만, 김종하 선생이 대전 중앙의원을 언제 정리했는지, 무슨 이유에서 대전을 떠나 1934년 조선총독부 관보에 함경북도 옹기군 마약중독자치료소의 공의(公醫)가 되었는지 파악되지 않았다. 김종하 선생은 1932년 함북 옹기 동인의원을 운영하고 1942년 고향인 함흥에서 진해의원을 개원했으며, 해방 후엔 함흥의전 부속병원 소아과 교수로 부임했다. 연구를 수행한 김대겸 원장은 "그가 의사로서 직업을 마산에서 시작해 대전을 거쳐 세월이 갈수록 점점 고향 함흥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도일보 2월 28일자 보도
대전 첫 조선인 개원의 김종하 선생에 대한 중도일보 2022년 2월 28일자 보도.
김종하 선생의 생애는 1948년 12월 함흥의전을 퇴직한 8명의 교수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확인된 이후에는 더는 찾아지지 않았다. 당시 북한에서는 자산가 집단으로서 의사들은 토지개혁과 종교활동 제약 등으로 신분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개인 병원의 인민병원 전환 움직임으로 이에 거부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게 월남했다. 때문에 김종하 선생도 함흥의전을 퇴직한 후 월남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보훈처와 대한의사협회, 국군 전사자, 북한군 포로명단에서도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김대겸 원장은 "1900년 생인 김종하 선생의 '리력서'에는 조국의 패망으로 야기된 얼룩으로 시작해, 3.1운동과 같은 민족의 저항과 갈라진 이념의 대립 또한 어려 있었다"라며 "열아홉 살의 조선 청년은 일본인 판사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덤덤하고 꼿꼿하게 밝혔다"고 강조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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