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좀 억울한 경우가 가끔 생기기도 했다. 가령, 11월이나 12월에 태어났을 때, 불과 한 두 달 후에 두 살이 되는 기막힌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나이 한두 살 많은 것이 별반 상관이 없지만, 나이가 들면 이렇게 터무니없이 나이가 많아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식으로 계산되는 나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일러주는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지는 않다. 이는 관습에 속하는 일이어서 그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데도 나이가 이렇게 계산되어야 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것은 인간 수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지금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80세가 넘지만, 이전 사회에서는 대략 그것이 30~40세 전후였다. 특히 평균 수명이 이렇게 짧은 원인은 대개 유아사망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과거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혹은 한두 해 지나서 죽는 사례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두 해라도 더 살았다는, 아니 살고자 한 욕망의 표현이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부여하게끔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한다.
두 번째는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뿌리 깊은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문화이다.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에게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는 것이 장유유서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장자는 무조건 존대를 받았고, 또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일상에서 누구와 다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너 몇 살이야?"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이로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 의해 불거졌던 갈등들은 어떻든 정리되곤 했다. 요즈음 흔한 말로 "나이 많은 게 무슨 벼슬"처럼 생각되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70년대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는데, 이때 수많은 농촌 총각, 처녀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런 무질서하게 몰려든 집단들을 질서화시킨 것이 나이의 논리였다. "나이가 너보다 많다. 그러니 언니, 오빠, 형, 누나 대접을 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때 나이는 되도록 많아야 좋았다. 그러다 보니, 성문화된 호적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맞는다 해도 "호적이 잘못되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인 것이 이때의 현실이었다.
셋째는 가부장제적인 질서이다. 유교문화권에 놓인 한국 사회는 족보 문화가 대단히 중요시되었고, "대를 잇는다", "자손을 잇는다"라는 정서가 매우 강했다. 조혼의 풍속이 있긴 했지만, 어떻든 이런 전통을 잇기 위해서는, 그래서 결혼을 좀 일찍 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야 했다. 궁극적으로 결혼이란 연륜이 필요한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한 살이라도 많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런 조급함이 만들어낸 것이 또한 한국식 나이의 기원이었다.
지금까지는 한 살이라도 더 많아야 하는 문화가 지배했기에 한국식 나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문화들이 사라지는 형국에 놓여 있고, 그것이 "만 나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방식을 낳게 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이력서를 쓸 때 어떤 나이를 기록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또 '만 OO세'라는 말도 없어지게 되었다. 의료의 발달과 더불어 유아가 조기 사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가부장적 질서에 바탕을 둔 조혼의 풍습도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이제 나이를 앞세워 상식을 초월한 채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일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이의 통일이 가져오는 또 다른 효과이어야 한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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