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세의 남자 0 순위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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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세의 남자 0 순위 정약용

정온/ 수필가

  • 승인 2023-01-15 16:1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눈서리 찬 기운에 수심만 더욱 깊어지고 등불 아래 한 많은 여인은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고 그대와 이별 7년. 서로 만날 날 아득하네." 홍혜완(1761~1838)

님에게 그리움의 시와 함께 노을빛 치마를 보낸 이는 누구일까? 홍혜완은 어떤 여인일까? 그녀는 바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아내 풍산 홍 씨였다. 조선 여인의 이름이 알려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지금의 나를 누가 청주 정씨라고 부른다면 웃길 것 같다.) 다산의 문집 속에서 혜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발견되었다.

다산보다 1살 연상인 그녀는 막내아들을 안고 유배 가는 남편을 배웅했다. 금실 좋은 부부는 그렇게 18년 동안 이별하게 되었다.

유배지에 있는 남편에게 왜 그녀는 신혼 때 입었던 붉은 치마를 보낸 것일까? 홍 씨로 빙의해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려 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보낸 신혼 시절을 생각하며 잘 버티라는 격려의 깃발이었을 것이다.



가장 아끼는 추억의 치마를 보냄으로 자신의 아바타처럼 생각하고 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남편을 향한 애정+ 바람피우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함께 보낸 것이었다. 천재 남편의 아내다운 면모였다. 난 그녀가 얼마나 지혜로운 여자인지 알 것 같다.

강진으로 유배길에 오르며 약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후크 선장의 갈고리처럼 뇌에 달라붙었을 것이다.

세기의 지성은 가족을 떠나며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처럼 손잡고 따라오는 아내가 궁금해 뒤돌아 보았을까? 가족에 대한 마음은 그의 발길을 덩굴식물처럼 잡았을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은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다. 작은형 약종은 사형을 당했고 큰형 약전은 흑산도로 향했다. 그 후로 그들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약용을 두렵게 한 것은 바로 풍토병이었다. 탄자니아로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는 제자는 풍토병 예방 주사를 여러 대 맞아야 했다. 조선시대 풍토병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역학에서 풍토병(風土病, endemic)은 자연환경이나 생활 습관 등으로 타 지역에 가면 발생하는 질병이다. 그 당시 유배길에 가다가 죽는 사람도 많았다. 유배라는 게 죽음의 번호표를 뽑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일까? 인간은 얼마나 위대할 수 있을까?

다산 정약용을 보면 한계를 알 수 없다. 인간의 지경을 넓힌 남자, 삶의 지평선과 수평선을 지워버린 남자, 성호 이익의 책을 접신하고 꿈을 현실로 바꾼 사나이! 인간이 얼마나 인내하고 감내할 수 있을까? 신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삶이었다.

약전과 약용형제는 나란히 같이 유배지를 향했다. 나주 북쪽 오리쯤 율정에서 헤어지면서 영원한 이별을 예감한 걸까? 그의 이별의 시가 애달프다.

栗亭別(율정별)//주막 초가 새벽 등불 푸르스름 꺼지려는데/일어나 샛별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두 눈만 말똥말똥 둘이 다 할 말 잃어/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흑산도 아득한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그대는 어찌하여 그 속으로 가시나요

학문이 삶에 대한 진정한 이유가 되는 새벽, 실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다산 정약용은 문을 열어야 할 순간 문을 잠근 조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그릇이었다. 사후 세계를 알고자 했던 유학자를 넘어선 철학자, 세상에 대한 지혜를 깨닫고 나서 삶 너머의 삶을 바라보고자 했던 자, 그가 바로 '내세의 남자 0순위 다산 정약용'이다.

정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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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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