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세 번 놀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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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세 번 놀라는 사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01-1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야, 저기 땅꼬마 지나간다."

"땅꼬마가 아니라 난쟁이네."

장난기 어린 말에 예사롭지 않은 시선까지 나한테 집중되었다.

"아이고, 대학생이라는 게 국민학생 1학년보다 더 작으네."



키 작은 것이 죄도 아닌데 나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심적 고통에 갈등까지 얹어 살아야만 했다.

이따금 씩 야유 섞인 소리가 들려올 때에는 왜 그리 속상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는 곳마다 단골메뉴가 되어 들려오는 소리라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갈등은 심해지는 것이었다.

스트레스 게다가 고민까지 가세하니 어떤 때는 죽고 싶은 생각까지 머리를 쳐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잘못도 없이 키가 작다는 구실 하나로 가는 곳마다 조롱과 야유의 눈길이니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초등교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감각이 무뎠는지, 골림을 덜 받았는지 모르지만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허나, 고교 대학시절은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인생자체를 비관도 많이 했다.

어디 지나갈 때' 난쟁이'' 땅꼬마'를 외쳐대는 야유와 조롱이 나올 때는 자신이 그냥 싫어졌다.

'남 다 크는 키도 이리 작게 낳아 주셔 죄인 아닌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야 하나! '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마냥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밉기만 했다.

내 신장 150㎝ !

단신의 키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되는 건 아니건만 삶 자체가 수난의 연속이니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고등학교 대학 다닐 때는 조롱과 야유를 짊어지고 사는 삶인 데에다 사범대학 입시 면접 때는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서 속을 태우면서 몸이 달치는 시간도 있었다.

면접관 교수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단신의 키인 나를 쳐다보고 신장이 얼마냐며, "아니, 키가 저리 작아 학생들 앞에 어떻게 설 수 있겠나! 신장기 좀 가져와요 " 하고 체육과 교수가 조교에게 한 말이었다. 조교는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그 당시 수험생들은 거의 모두가 사복을 입고 면접시험을 보러 왔는데 나만 고지식하게도 교복을 입고 갔다.

교복 입은 나를 보고 홍고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도 홍고 나왔다며 아는 체를 했다. 지푸라기 하나만 있어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그런 위기에서 선배를 만났으니 천우신조로 생각됐다.

조교인 선배한테 신장기를 가져오라고 했지만 그걸 갖다 주었다간 후배인 내가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을 선배는 한 것 같았다. 선배 조교는 그런 생각으로 신장기를 갖다 주지 않았다. 찾아보니 신장기가 없다고 한 거였다. 선배의 후배 살리기 위한 배려의 마음 덕분에 나는 일단 다급한 위기는 모면한 것 같았다.

선배 덕분에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난 게 분명했지만 그걸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들으니 합격자 당락을 결정하는 입학사정회 자리에서까지 내 키 작은 것이 회부가 되어 격론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행이었던지 내 입학시험 필답시험 성적이 국어과 커트라인보다 많이 높은 점수여서 그걸로 살아났다는 거였다. 그 때만 해도 난 무신론자였지만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밖에 없었다.

키가 작아서 불합격 처리 될 뻔했던 내가 대학을 들어가게 됐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키가 작아서 받는 서러움과 정신적 고통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초임지 덕산고등학교로 발령받아 근무를 할 때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 학교 전체가 법석을 떠는 환송으로 학교를 떠났다. 집결지인 논산 훈련소로 머리를 짧게 깎고 갔다. 논산 가기만 하면 바로 입소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징병신체검사를 다시 하는 것이었다.

징병 검사관과 군의관이 나를 보더니, " 어디서 이런 난쟁이 좆만 한 새끼가 여기까지 왔어 !" 하더니 또 신장기로 키를 재는 것이었다. 결과는 체중 미달 신장 미달로 불합격 판정이 내려진 거였다.

그 바람에 논산훈련소까지 갔다가 퇴소 조치를 하는 바람에 다시 학교로 가서 교직생활을 하게 됐다.

신장이 작아 보충역 방위 병으로 덕산 지서에서 근무를 했다. 방위 병으로 군복무를 하는 중에도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낮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격일로 지서에 나가 보초를 섰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내가 고사의 주인공이 되어 고사의 참뜻을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한 때 나는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가 되어 인생 비관도 남달리 많이 했다. 특히 결혼 적령기엔 키가 작다는 이유에서인지 결혼 배우자를 물색하기가 어려웠다.

주변 동료들은 연애를 하면서 낭만을 즐기기도 하고 맞선도 보러 자주 나가는데 나는 그렇지를 못했다.

그 때의 갈등과 고민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혼담 예기가 나와 상대방이'키'자만 꺼내면 아무리 좋은 혼처의 아가씨라도 그 혼담은 없었던 것으로 했다. 그만큼 키 작은 것이 열등감으로 작용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내 자신이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키 작은 것이 나를 돋보이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키가 작은 덕분에 상대방이 얕보지 못하도록 내실을 기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교사의 길을 걷게 된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밤잠을 설쳐 가며 많은 작품을 암기했다. 또 다른 선생님들이 하기 어려운 교안 없는 수업으로 학생들을 제압하고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많은 참고서와 문제집을 섭렵하고 그 내용을 암기했다. 게다 가난 덕분에 대학까지 고학을 해야 했기에 그 기간 학생지도를 한 것이 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시달리는 세월속에 불굴의 의지로 다져진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하고 키가 작아 삶의 과정은 어려웠지만 그 덕분에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학생들이 따르는 교사가 됐다. < 걸어 다니는 사전 > 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덕분에 얻은 거였다.

가난하고 키가 작아, 한 때는 불평 속에 부모님을 원망도, 미워도 했지만 지금은 감사를 드린다.

탓하는 < 때문에 >를 감사하는 <덕분에 > 로, 새로운 깨우침을 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키가 작고 가난한 덕분에 괜찮은 물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키 얘기를 하다 보니 교직 생활 중에 들었던 나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다.

나(남상선)를 처음 보는 사람은 세 번 놀란다는 얘기였다.

첫 번째는 키가 너무 작아서 놀라고

두 번째는 학생들의 감화력 있는 지도에 놀라고

세 번째는 실력에 놀라 학생들이 꼼짝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어떤 악조건도, 치명적 단점도 '덕분이라' 생각하고 노력하면 감사할 수 있는 보물 상자가 기다리고 있다.

역경과 고난은 오히려 내 앞에 놓인 성공의 지름길이란 걸 알아야겠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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