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유선 연구위원 |
2021년 대전역을 중심으로 창업한 이주여성에 대한 사례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게를 방문했다.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신고하는 가운데서 꿋꿋하게 가게를 운영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가게를 시작한 경제적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이주여성이 있었다. 음식점을 창업한 사례가 주를 이뤘지만, 옷가게와 슈퍼, 카페를 창업했거나 자원이 부족해 길가 가판대에서 음료수와 빵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요리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우는 교육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이주여성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것을 상품화하고 상품을 구매할 고객을 예측하며 고객이 오기 쉽고 선호하는 장소를 식별할 줄 아는 사업 감각을 지녔다.
베트남에서 온 김설희(가명) 씨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에 식당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식당 계약부터 인테리어까지 한국인 남편 도움이 컸다. 식당에 있는 동안 2명의 자녀를 돌봐주는 시부모님과 퇴근 후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는 남편은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식당의 성패를 가르는 주방은 베트남에서 온 친정엄마가 담당하고 있다. 김설희 씨는 개업 2년 후, 큰 식당으로 이사했다. 그녀의 사업 능력과 더불어 한국과 베트남 가족 모두의 협력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성공이다. 출신국의 음식문화를 자원으로 하는 이주여성의 사업은 출신국의 가족, 특히 친정어머니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다른 3명 이주여성의 창업과정과 성공도 김설희 씨와 유사하다.
이주민의 사회 적응과 정착에 있어 사회참여, 특히 경제활동 참여는 주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한국어와 한국요리, 한국문화 등 적응교육과 함께 경제활동 참여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이주여성의 경제활동은 생계유지라는 이유 외에도 가족의 인정과 자기 정체성의 확인, 그리고 사회적 역할 및 소속감과 연계된다. 직업은 이주여성의 사회적응력을 높이는 한편, 다른 문화에서 경험하는 소외와 우울, 고독 등의 감정을 극복하는데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취업을 하건 창업을 하건 이주여성에게 '일'은 가족유지를 위한 생계활동이면서 생활세계의 참조체계를 지역민으로 하는 소속감의 확인 과정이며 한국인 되기와 같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행정안전부가 매년 발표하는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전인구 1,479,740명의 2.2%인 3만3천78명의 외국인 주민이 우리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대전시민 50명을 만나면 그 가운데 1명은 외국인 주민인 셈이다. 이제 '다문화'는 정책이나 이론 속에 있는 추상적 용어가 아니라 일터, 식당과 카페, 거리, 학교 어디서나 그리고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생활세계는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로까지 확장되고 지역민의 문화는 다채롭고 풍요로워진다. 이들이 가져온 레시피로 중국 딤섬과 비슷하지만 다른 필리핀 룸피아(lumpia)를,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banh mi)를, 네팔 가정식 요구르트 도히(Dohi)를 지역에서 즐길 수 있다. 이미 와 있던 선주민 내국인과 새롭게 온 이주민이 함께 만드는 사회는 글로컬(glocal)이 될 거다. 정책으로써의 다문화나 세계화가 아닌 '일상생활 속의 다문화'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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