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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염려증 환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현대인은 음식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 먹는다. 당, 나트륨,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콜레스테롤, 포화지방 등 이것저것 가려먹어야 할 게 너무 많다. 동물은 어떨까. 본능이 강한 동물이야말로 어떻게 먹을까. 간혹 인간은 독버섯을 먹고 사망하거나 간신히 살아나는데 멧돼지, 고라니는 어떻게 그 것을 피해 갈까. 사막의 낙타는 짠 소금을 핥아 먹고 사자는 사냥한 임팔라를 내장부터 파먹는다. 내장은 갖가지 영양분이 풍부하지만 쉽게 부패한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위험한지, 안전한지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개 풀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 개가 풀을 뜯어먹는 걸 봤다. 엄마는 개가 뱃속이 안 좋아서 풋것을 먹고 속을 게워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본능이야말로 과학이다.
나는 식욕 앞에선 참을성이 없다. 맛있는 걸 먹을 땐 세상이 핑크빛이다. 지난 연말엔 동지가 가까워오자 팥죽이 사무치게 먹고 싶어 동짓날 연차를 냈다. 그날은 맹추위와 함께 눈보라가 몰아쳤다. 온 몸을 중무장하고 보문산 아래 절로 향했다.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뿌연 상태서 엉금엉금 걷다가 그만 경사진 길에서 꽈당 넘어졌다. 머리가 띠잉 하면서 골이 흔들리는 듯했다. 뇌진탕은 아닌 것 같아 그대로 직진. 재작년엔 좀 짰는데 이번 팥죽은 완벽했다. 진하고 입천장에 짝짝 붙는 쫀득한 새알도 그득했다. 머리에 난 주먹만한 혹과 맞바꿔 먹는 셈이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12월 끝자락에 회사에서 피자먹을 일도 있었다. 피자를 보는 순간 내 위장은 에어로빅 선수처럼 격하게 움직이고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단숨에 여덟 쪽을 먹었다. 맛있게 먹으면 많이 먹어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는 '요맘때'라는 콘에 푹 빠져 살았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요거트 맛이 나는 이 아이스크림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의사들은 아이스크림은 설탕 범벅이라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다고 경고한다. 나도 건강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늙어가는 나이지만 어느새 내 손은 아이스크림을 집어 든다. 에이 못 참아, 그냥 먹을래. 한동안 원 없이 먹고 나니 어느 순간 뚝! 몸의 호르몬이 알아서 조절하는 건가.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건강에 해로운 변화가 일어나려고 할 때 메커니즘은 그 변화와 반대되는 과정을 활성화시켜 몸을 보호한다는 원리다. 몸이 아프면 밥을 제대로 못먹는다. 그러다 회복되면 식욕이 왕성해지는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어떤 이는 왜 병적인 비만이 되는 지는 생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은 크림빵이 그다지 당기지 않아 바게트나 호밀빵을 먹는다. 지난 주말엔 소금만 한 꼬집 넣고 늙은 호박, 밤, 여러 가지 콩이 들어간 떡을 해먹었다. 이러다가 또 어느 날 단 것이 확 당길 것이다. 그럼 그땐 초코케이크를 퍽퍽 퍼먹으면 될 일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 듯.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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