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四知(사지) : 네 가지가 알고 있다. 곧 [천지(天知), 지지(地知), 자지(子知), 아지(我知)] 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글 자 : 四(넉 사/ 네 번째) 知(알지)
출 처 : 후한서(後漢書) 양진전(楊震傳) 십팔사략(十八史略)
비 유 : 청렴결백(淸廉潔白)한 벼슬아치에 비유
12월 25일은 온 인류가 축복으로 하루를 보내는 성탄절(聖誕節)이다.
바로 2022년 전, 원죄(原罪)의 사슬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일이 되는 날이다. 그는 약자(弱者)를 위하여 행동하였고, 죄인을 구원하는 실천으로 이 때부터 인류의 영생(永生)은 시작되었고, 그날을 기억하며 영광과 축복과 찬양으로 하루를 거룩하게 보내고 있다.
이어서 5일만 지나면 한 해[一 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희망(希望)의 한 해를 맞는 세모(歲暮)의 분위기에 젖어 나름대로 한 해를 되돌아보곤 한다.
필자가 중도일보에 고사성어(故事成語)를 게재(揭載))한지 꽉찬 3년이 되었다. 매주 화요일 모바일 신문을 통해 평소 눈여겨보았던 고사성어를 현 세태에 비유하면서 빠짐없이 개제하여 오늘 150회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매번 채찍과 격려로 지도해주신 형파(亨波) 김용복(金龍福) 선생님과 중도일보 관계자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늘은 지난 한 해의 나 자신을 잠시 돌아보는 양심(良心)의 기준을 짚어보고자 한다.
후한시대(後漢時代)는 환관(宦官)들이 활개치고, 나아가 관료(官僚)까지 부정부패(不正腐敗)한 시대였으나, 반면에 고결(高潔)한 관리도 없지는 않았다.
제 6대인 안제((安帝)때의 양진(楊震)도 그러한 부류의 한 사람이었다.
양진(楊震)은 관서(關西)지방 출신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했고, 또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인물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관서(關西)의 공자(孔子)?라고 찬양했다.
그 양진이 동래군(東萊郡)의 태수(太守)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부임하는 도중 창읍(昌邑)에서 여관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늦게 창읍현(昌邑縣)의 현령(縣令)인 왕밀(王密)이 남모르게 찾아왔다.
"태수님, 반갑습니다. 형주(荊州)에서 저를 이끌어주신 왕밀(王密) 입니다."
"오오~ 오래간만이군."
양진은 왕밀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에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냈을 때 그 학식을 아껴 수제(秀才)로 올려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옛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런데 왕밀이 품안에서 금 10근의 거액을 꺼내 놓았다. 양진에게 드린다고 했다. 양진은 온화하게 그러나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옛 친구인 그대의 학식(學識)과 인품(人品)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 그대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잊어버렸나?"
"아닙니다. 태수님! 태수님이 얼마나 고결한 분인지 뼈에 새기고 있습니다. 허나 이것은 뇌물(賂物)이 아닙니다. 그저 옛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
"그대는 내가 예견한대로 훌륭히 성장해서 현령이 되었네. 앞으로 더욱 정진(精進)해서 나라를 위해 진력(盡力)하게. 내게 대한 보은은 그것이면 끝일세!"
"아닙니다. 태수님. 그리 냉정하게만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지금은 야밤중이고 또 이 방에는 태수님과 저와 두 사람밖에 없어 아무도 모릅니다."
여전히 양진은 온화하게 왕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일순 그의 눈이 번쩍 빛남과 동시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 우선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거기다 그대고 알고(子知), 나도 알고(我知)있지 않는가?"
어지간한 왕밀도 양진의 양심적인 행동에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그 후 양진은 한층 고결한 자세를 유지(維持)하여 이윽고 태위(太尉/ 현 국방부장관)에 오르게 되었다.
훗날 양진은 모함을 받아 목숨을 끊을 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잡목(雜木)으로 관을 짜고, 포(布)로 한 번만 쌀 것이며, 조상의 무덤 옆으로 운반하지도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양진이야 말로 청렴을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복잡했던 임인(壬寅)년이 저물었다. 이 해에 우리는 희망(希望)도 보았고, 절망(絶望)도 겪었고, 기뻐도 했고, 슬퍼도 했으며, 분노(憤怒)도 했고, 벅찬 마음으로 응원도 했다.
금년도는 유난히 세계 각국이 모두 경제적 어려움 속에 힘들어 하고 있다.
질병(疾病/코로나)이 발목을 잡아 경제를 위축(萎縮)시키고, 전쟁(戰爭)이 많은 희생을 강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약자(弱者)편에 서는 따뜻한 온정(溫情)과 양보(讓步)와 배려(配慮)의 훈훈한 풍속마저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대학(사서삼경 중 대학)이 주논 교훈을 소개해본다
'국가의 어른이 되어 재물을 쓰는데만 힘쓰는 자는 반드시 소인(小人)이니. 소인으로 하여금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해로움이 함께 이루리라. 그 가운데에는 잘 하려고 하는 자가(소수인원)있더라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나라(國家)는 이로움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의(義)로 이익을 삼아야 한다.(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 爲善之 小人之使爲國家 ?害竝之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 國 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 장국가이무재용자 필자소인의 피 위선지 소인지사위국가 재해병지 수유선자 역무여지하의 차위 국 불이리위리 이의위리야)'
곧 위정자가 정의롭지 못하고 개인의 이로움만 챙기면(부정, 부패, 탐욕 등)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한해를 돌아보며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장상현 / 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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