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인정, 겸손, 존중, 꿈이 토끼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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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인정, 겸손, 존중, 꿈이 토끼의 지혜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3-01-09 10:3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자연은 반복적으로 순환한다. 그렇다고 매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무관심한 사람 눈에 그저 그러려니 비칠 뿐, 시간이란 공간이 있고 변화가 있다. 때문에 같은 날의 반복이지만 각각 의미를 부여하고 살피는 것이리라. 해가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반복이다. '해'라고 하는 의미 덕에 갈무리와 희망을 쓴다. 희망은 앞날에 대한 기대이자 목표이다.

동양에서는 천간지지로 시간에 의미부여하기도 한다. 천간은 10을 세는 기법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지지는 달의 운행에 따른 열두 달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별자리 단위이다. 12지로 되어있다. 각각 동물을 대응시켜 놓았다. 올해는 토끼이다.

토끼의 재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 <수궁가(水宮歌)>가 있다. 한국인이면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다. <토끼타령>, <별주부가>, <토별가>라고도 한다. 별주부는 '자라'이다. 거북이로 보기도 한다. 수궁가 판본이 100여 종에 이른다 한다. 모두 검토하지 못했지만 대충 이러하다. 남해 용왕이 병들어 통탄한다. 선의도사가 찾아와, 토끼 간이 특효약이라 한다. 승상 거북이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세상에 나온 거북이 토끼를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꾀어 바다 속으로 데려 간다. 궁지에 몰린 토끼가 말한다. 엄청 귀중한 간인지라 평소에 빼놓고 다녀, 지금 뱃속에 없다. 박봉술류 수궁가에 의하면 "소토의 간인즉, 월윤정기月輪精氣로 생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들이내다 세상의 병객病客들이 얼른하면 소토의 간을 달라고 보채기로, 간을 내여 파초 잎에 꼭꼭 싸서 칡덩굴 칭칭 동여 영주석상瀛州石上 계수나무 늘어진 상상가지 끝어리다 달아매 놓고. 도화유수옥계변桃花流水玉溪邊에 탁족濯足하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흥미가 좋다하기로 완경차玩景次로 왔나이다." 다시 육지에 나가 가지고 와야 한다고 한다. 꼼짝없이 배가 갈려 죽을 판에 기상천외한 지혜로 사지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재담이 가득 담겨 있다.

수궁가의 내용은 삼국유사에도 등장한다. 백제의 침략에 시달리던 김춘추가 외교전을 펼치기 위해 고구려를 찾아간다. 고구려 보장왕은 신라가 점령한 죽령이북을 돌려주어야 도와준다며 김춘추를 가둔다. 구금된 김춘추가 보장왕의 총신에게 청포 3백 필을 뇌물로 주고 도움을 청한다. 총신 선도해가 귀토지설(龜?之說)로 방도를 암시해준다는 대목이다. - 용왕의 딸이 병에 걸리자, 의원이 토끼간이 약이 된다 말한다. 용왕 앞에 잡혀간 토끼가 말하길 내가 천지신명의 기운에 힘입어 오장을 꺼내 씻고 다시 넣을 수 있는데, 오늘 하필 간을 꺼내 씻어 바위 밑에 넣어 놓고 온 것을 깜박하고 왔구려.- 우선 빠져 나가고 보란 말이다. 알아챈 김춘추가 보장왕에게 선덕왕을 설득하여 죽령 이북 땅을 돌려주겠다고 글을 올린다. 돌아와서는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약속이라며 파기한다.



문희상 전국회의장이 교토삼굴(狡兎三窟)을 언급했다. "토끼는 영민한 동물이라 늘 준비하고 특히 굴을 세 개 판다고 해서 '교토삼굴'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며 "올해는 아무쪼록 우리도 영민한 토끼를 닮아서 플랜2, 플랜3의 대안을 마련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정치적 의미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토끼의 지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근심이 많으면 편히 잠잘 수 없다. 안심하기 위하여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재난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토끼를 토끼장에 키웠던 사람은 그의 생태를 잘 모른다. 울타리 안에 방목하였다가 낭패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굴 파고 모두 울타리 밖으로 달아났다. 토끼는 굴속에 살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굴을 판다는 생리를 몰랐던 것이다.

세상엔 강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약자가 부단히 살아간다. 아무리 나약한 미물이라도 살아가는 지혜가 있다.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다. 물을 물로 봤다간 큰 코 다친다. 무조건 그와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은 정해진 형태조차 없지만, 성나면 막을 재간이 없다.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어찌 아무런 고통이나 노력 없이 살아갈 수 있으랴. 폭염 이긴 나뭇잎을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것이 없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있는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처럼 인간사에 늘 있는 일이다. 삶의 과정일 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찾는다. 보이는 것뿐이 아니다.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반복이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진부하다. 놀라운 사실도 반복하다 보면 평범함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대상이 아니라 바라보는 눈이 새로워져야 한다.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대하면 모든 일상이 특별해진다.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새해 소망을 적어보자. 꿈의 복주머니를 만들어 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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