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창구 상병의 인식표가 미국에서 발견돼 독지가의 노력으로 대전으로 돌아왔다. 낙찰 방식으로 국내에 귀환시킨 독지가가 인식표를 손에 보이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대전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독지가 A씨는 "미국 경매사이트에서 김창구 상병의 인식표가 매물로 올라온 것을 보고 고국으로 귀환시켜 유족이나 국방부에 전달하고자 경매에 참여해 낙찰받았다"고 설명했다.
군번 5307582 김창구 상병은 1931년 7월 3일 전북 전주 태생으로 만 20세가 되기 전에 입대해 최전방에 배속됐다. 그는 백선엽 대령의 국군 1사단과 함께 전성호 대령을 중심으로 편성된 12연대에 배치돼 개성을 방어했고, 임진강을 배수의 진으로 삼아 적의 전차부대에 저항했다. 청산리전투 등의 항일운동 때부터 전장을 누빈 전성호 대령이 깊은 부상을 입을 정도로 6·25전쟁 발발 첫날 12연대는 격렬히 맞섰고, 김창구 상병은 이날 현장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6.25전쟁 발발일 최전방에서 전사한 고 김창구 상병의 인식표. 미국 경매사이트에서 해외를 떠돌뻔한 것을 대전 독지가 노력으로 국내에 귀환시켰다. |
미국에서 국내에 귀환한 김 상병의 인식표는 국방부나 국가보훈처, 국립현충원 등 인수할 기관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 상병의 유해는 개성과 임진강 전선 어딘가 발굴을 기다릴 것으로 여겨지나, 이보다 앞서 그의 인식표를 인수해 보관하거나 유족을 찾아줄 기관이 누가 돼야할 지 한 달째 논의 중이다.
독지가는 인식표가 미국 경매에 올라온 때부터 국방부와 유해발굴단에 알려 귀환시킬 것을 요청했으나 답이 없자 직접 낙찰받아 현재 보관 중이다. 국민신문고에 사연을 게시해 담당 기관과 부서를 정해 나서줄 것을 공식 요청했으나 국방부는 한 달째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지가 A씨는 "유족 없는 장병이 전사했을 때 국가가 인식표를 어떻게 처리해 예우할 것인지 방침이 아직 없다는 것이 놀랍다"며 "이번 기회에 절차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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