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동네서점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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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동네서점으로의 여행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3-01-09 15:11
  • 신문게재 2023-01-10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회색 안개가 자욱하다. 삼 년째 코로나로 막힌 숨통이 '위드 코로나'로 조금 풀어지려나 기대했는데 뜻밖에 오랜 책방인 계룡문고가 임대료를 못 내 폐업 위기에 몰렸다는 기사가 떴다. 계룡문고는 아주 크지도 적지도 않은 대전만큼의 향토색을 갖고 있었다. 대전 문화의 깊이와 색깔에 어울리는 서점으로 번잡하지 않아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서점은 고객이 지급하는 비용 이상의 가치를 고객한테 줄 수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책을 통한 문화의 전파자라 할지라도 복합적으로 밀려드는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듯하다.

3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 사태 수습에 따른 후폭풍과 강대국들에 의한 영토 분쟁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불확실성이 짙어졌다. 불안정과 불안이 지속하는 현상을 'permanent'와 'crisis'를 합쳐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라고 한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터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지역 서점가는 진작 이런 환경에 노출되었다. 유명작가에 대한 쏠림현상, 인터넷 책 주문, 종이책보다는 스마트폰이나 전자책으로 책이나 웹툰 읽기, 무엇보다 성인들이 책을 사서 읽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곪아가고 있었다.

문화의 품격은 생각의 깊이에 있고 사유의 깊이는 독서를 통해 길러질 수밖에 없다. 문화의 다양성은 책의 종류와 같고 독서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지역의 문화와 공존하는 서점들이 없으면 문화의 품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서점은 커피숍과 비슷한 점이 있다. 대형서점들의 체인점은 브랜드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맛이다. 커피숍에 가서 까페라떼를 시켜보면 안다. 브랜드 커피숍에서는 에스프레소에 자동으로 끊인 우유를 부어서 준다.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은 스팀 피처로 하트나 나뭇잎 모양 등을 내어 마시는 내내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지역 서점은 동네 커피숍과 같은 독특한 맛과 멋을 갖고 있다.



둔산동 교보문고에 들렀다. 대전 중심지에 있어 평일 오후인데도 젊은이들로 붐볐다.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맞춘 책들을 갖추고 팔릴 수 있는 책으로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진열방식도 뛰어나다. 진열대 가운데 있는 쉼터에서 책을 펼쳐보지만 북적거림 탓인지 이내 피곤했다. 유성 영풍문고가 있는 상가에는 임대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유명서점이 입점하면 상권이 활성화된다고 했는데 경기 불황을 피해갈 수 없는 듯하다. 영풍문고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서 주위를 둘러본다.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 서너 명이 노트북을 보고 있고 젊은 여성 두어 명이 아기를 데리고 책을 살핀다. 두 곳 모두 중년의 나잇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베이버부머' 세대는 신중년으로 불리질 정도로 왕성하게 사회와 연결고리를 맺고 있어 아직 책을 멀리할 나이는 아니다. 그들은 제2의 인생을 위한 배움이나, 캠핑, 당구나 탁구로 취미활동, 둘레길 탐방, 시골살이, 건강 걷기, 여전한 현역, 손주 돌봄 등으로 세월을 낚고 있을 듯하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책방을 기웃거리는가. 인터넷신문으로 뉴스와 정보를 접하고 유튜브를 통해서 지식을 얻지만 깊이 있는 지식은 책에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책은 서문을 읽고서 사는데 서점을 둘러보며 진열된 책들의 제목을 보는 눈요기도 쏠쏠하다.

우리나라 이삼십 대 여성은 출판시장을 이끌며 유명작가들을 탄생시키는 주역이다. 작가라면 눈길 한 번 제대로 받고 싶어도 거기는 메이저리그의 세계라 언감생심이다. 다행히 지금은 누구나 자기의 역할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내는 시대이다. 향토의 서정을 품고서 한 명의 독자가 있더라도 책을 쓰려는 작가들의 글이 사장되지 않으려면 지역사회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오래된 지역 서점이 사라지면 도시의 추억, 작가의 텃밭도 그만큼 없어지는 것이 아닐는지.

커피숍에서 책을 펼치고 행인들의 어깨를 쳐다본다. 사는 게 막막할수록 가끔 가까운 동네서점을 찾아보는 여유로 문학의 향기를 맡는 새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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