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미 교사. |
12월, 학습연구년을 마무리하면서 언젠가 학교 밖 학습공동체에서 함께 읽었던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을 다시 펼쳐 보았다.
올해 학교 밖에서 마주한 태안은 어쩌면 미국의 경제대공항으로 실직한 리디아의 아빠와 가족, 그로 인해 삼촌 집에 홀로 보내진 어린 리디아, 일만 하며 홀로 외롭게 지내는 삼촌, 그리고 집집이 놓여 있는 빈 화분만 가득한 삭막한 그림책 속 동네와 닮았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 것일까?
지난 10여 년 전부터 학교 안에서는 학교 자치,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학교 문화 만들기, 교육과정과 수업 혁신 등 새로운 학교 문화로 공교육을 혁신하려는 교육공동체의 헌신과 노력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리디아 아빠의 실직과 실직으로 인한 가족 해체가 오롯이 개인이나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과 교육의 문제는 학교의 혁신만으로는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인구 절벽, 지역 소멸, 삶과 분리된 교육과 같은 문제들은 민, 관, 학이 연대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함께 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지역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림책 속 리디아는 오랜 시간 웃음이라곤 모른 채 살아온 삼촌에게 아주 긴 시를 써서 건네주기도 하고 가게 일꾼들과 함께 일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 엄마, 아빠, 할머니께 배운 지혜로 빵 가게와 주변 그리고 비밀 장소에 꽃씨를 심어 나간다. 이웃들과 손님들이 꽃을 심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삶을 가꾸어 나가는 리디아, 또 그런 리디아를 보고 변화하는 사람들. 어느새 꽃을 구경하거나 물건을 사는 손님들과 꽃을 가꾸는 이웃들로 삼촌의 가게와 가게가 있는 거리는 북적거린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리디아가 주위 사람들과 함께 삶을 가꿔나가는 모습은 내가 올 한 해 학교 밖에서 만난 많은 사람을 떠오르게 했다. 또 두려운 마음이 컸을 리디아가 삼촌 동네에 빈 화분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도 쓸쓸함이나 절망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봄을 준비하고 기다렸던 것처럼 많은 교육 주체들이 희망을 노래하며 태안의 봄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가 온전히 교육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마을교육공동체 철학을 공유하며 마을에서도 돌봄을 함께 책임지는 갈두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갈두천마을학교와 안면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안면마을학교, 마을연계교육과정으로 학교와 마을을 잇고 삶을 배우는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태안 마을교육공동체 교원실천연구회 회원님들, 삶을 배우는 교육을 위해 함께하는 많은 교육공동체가 모두 내가 만난 태안의 리디아다.
또 태안지원청과 태안군청의 행복교육지구 업무담당자분들,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학부모님들과 마을 교사분들이 태안 곳곳에서 아름다운 꽃씨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태안의 리디아였다.
드디어 아빠의 취직 소식에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리디아. "절대로 일손을 놓지 않는 원예사답게 살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집으로 돌아가 다시 정원을 가꾸겠다는 리디아처럼 태안 마을교육공동체도 민, 관, 학이 연대해 건강한 교육생태계를 만들어나간다면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내년, 리디아처럼 그렇게 살아가야지 하며 꽃씨를 심고 가꿀 봄을 준비하며 행복하게 기다려 본 우리도 리디아처럼./한성미 근흥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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