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단체 모임에서 만난 B시인의 말이었다. 충북 옥천 출신인 시인은 내게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청양 특유의 언어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옥천이나 청양이나 다 같은 충청도인데, 못 알아듣는 말도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나는 대전에서 50여 년 넘게 살면서 평소 표준말을 구사해 왔다고 자부해 왔다. 사투리가 더러 섞여 있어도 상대가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B시인이 나의 평소 언어에 대해 느낀 바를 임의롭게 지적해 주니,새삼 나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게 됐다.
"<걸터듬이>가 무슨 뜻인가요? <종애 골린다>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요? <이무롭다>(서로 친하여 거북하지 아니하고 행동에 구애됨이 없다. '임의롭다'의 방언)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으씩도 하지 않는다>(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처음 들어 보는 말입니다."
문단에서 이른바 '언어 마술사'라는 애칭으로 수십여 년 글을 써 온 중견 문인이 '으씩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 듣는다 하고, <걸터듬다>(음식이나 재물 따위를 몹시 탐하다:충청도 방언)와<종애 골린다>(남을 놀리어 약을 올림)'는 말도 생소하다니 뜻밖이었다.
과거 청년 시절, 고향에서 농사지을 때 동네 어르신들과 공동작업하는 일이 많았다. 이때 입담 좋은 어르신들의 구수한 우스갯소리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했다.당시 귀에 익었던 정겨운 내 고향 '농사꾼 언어'가 내게도 알게 모르게 입에 달라붙어 버릴 수 없는 일상 용어가 됐다.'언어 습관'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한 지역의 통용어뿐 아니라 집안에서 어른들이 구사했던 말씀도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닮아갔다. 도시 생활하면서도 시골 태생 '촌스러운 언어'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신세대 두 아들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아비 특유의 언어'가 튀어나오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껄정하다'가 무슨 뜻인가요? '쫄밋거리다'라는 말도 처음 들어요. '꺼끔하다'는 또 무슨 뜻인가요?" 아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내가 답하기 전에 청양 동향(同鄕)인 아내가 먼저 '해설사'로 나선다.
"<껄정하다>는 '하는 행동이 어설플 때', '옷차림이 몸에 잘 맞지 않을 때','지게 따위를 지고 가는 모습이 어딘가 엉성해 보일 때' 쓰는 말이지. <꺼끔하다>라는 말은 '뜸하다'라는 충청도 방언이고, <쫄밋거리다>는 '저린 듯하게 자꾸 떠 들렸다 가라앉았다 하는 모습'이지."
밥상머리에서 식구끼리 나누는 일상적인 언어나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이따금 설명을 요구받는<나의 고향 언어>는 바른말이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순화하거나 다듬어 써야겠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내 고향 언어>이면서<표준말 사전>에도 분명히 나와 있는 말[예를 들어<종애>등]임에도 낯설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은 사회에서 자주 쓰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글과 말로써 좀 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어원이 궁금한 것도 있고, 표준어인지 비표준어인지 궁금한 것도 있다. KBS 1라디오에서 매일 아침 방송하는<바른말 고운 말>도 빠짐없이 듣는다. 언어 지식 습득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현대인들은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 쓰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SNS에 댓글을 달면서도 미심쩍은 말은 반드시 사전을 찾아본다.평소 아는 낱말도 뜻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본다.스마트폰에 '표준국어대사전' 앱을 깔아놓고 수시로 검색해 보지만, <내 고향 언어>중에는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말도 꽤 있다.
나의 장형[尹佶遠]은 한평생 교단에서 '국어 선생님'이었다. 동생인 나에게는 '걸어 다니는 국어사전'이기도 했다. 큰형님 생시에 나눈 수많은 편지글, 수필, 시를 통해 동생은 바른 말 고운 말을 익혔다. 이런 글을 쓰면서 큰 형님을 그리워한다.
형님이 살아 계시면 진지하게 여쭙고, 토론해볼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런 글을 보시면 형님은 동생인 내게 어떤 조언을 해 주실까? 꿈속에서나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한다.
윤승원/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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