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대전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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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대전의 정신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 승인 2023-01-04 14:07
  • 신문게재 2023-01-05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백남우=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대전의 동구 가양동 보건대학교 인근 골목길에는 절개와 의리의 상징인 사육신 중의 한 분인 박팽년 선생 유허비가 있다. 좁은 골목길에 빙 둘러쳐진 담장밖에는 주차된 차량과 쓰레기 봉지와 재활용 품등이 쌓여 있다.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경이지만 이곳은 조선 시대 충청도 회덕현 흥농촌 왕댓벌로 불리던 곳이다. 송시열 선생이 글을 짓고 송준길 선생이 글을 쓰고 충청 관찰사 민유중이 두전을 한 평양 박 선생 유허비가 그의 옛 집터에 서 있다. 단종 복위 사건의 주역인 박팽년 선생은 대전 흥농(더퍼리)이 연고인 셈이다.

아름다운 대청호반이 펼쳐진 동구 회남로 신하동에는 기묘사화의 이름난 선비 김정 선생의 묘역이 있다. 원래 대청호에 수몰된 내탑리에 있던 묘역이 현재의 자리로 이장됐다. 봄에는 벚꽃길로 유명한 회남로 주변에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왕도정치를 위해 개혁을 시도하다 조광조와 함께 사사된 충암 김정 선생도 절의 정신의 올곧은 선비이다.

대전 동구의 우암사적공원에는 송시열 선생이 말년에 제자들과 강학했던 공간인 남간정사와 그를 배향한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이곳은 선생 초년의 공부방인 능인암과 흥농서당이 있던 곳이다. 주자의 뜻을 따르고자 말년에 주자의 시인 운곡남간에서 이름을 따와 붙인 남간정사는 그의 강학 장소이자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초빈을 한 의미 있는 장소이다. 1990년대 우암사적공원 조성 시 정절서원 터에 새로이 서원 형태의 건물을 짓고 우암의 사상인 직(直)을 따와 강당의 이름을 이직당으로 하였다. 이직당의 직은 직사상을 바탕으로 한 춘추대의(의리사상)가 우암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대전 동구 용운동(모리)에는 을사년 겨울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의로운 죽음을 택한 송병선 선생과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슬픈 소식에 형을 따라 순절한 송병순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문충사가 있다. 두 분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9대손으로 의로움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대전 서구 탄방동(숫뱅이)에는 도산서원이 있다.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웅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 선생의 십자훈 '매사필구시 무락제이의'(매사에 반드시 옳은 것을 구할 것이고, 의를 두 번째로 떨어지게 말라)는 그들의 제실이나 생활공간 곳곳에 걸려 있다. 의로움이 아니면 벼슬도 하지 말라는 깨끗한 선비정신을 일컫는 것이다.

대전 중구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는 신채호 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선생의 진외가가 안동 권씨로 그들의 집성촌인 도리미에서 태어나시게 되었다. 우리 민족 최대의 수난기였던 일제 강점기에 치열한 독립운동가로, 우리나라 근대민족사학의 지평을 연 역사학자로, 또한 언론인으로 활약하였다. 평생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수난과 역경 속에서 불의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민족만을 생각하고 헌신하였던 분이었다. 선생은 1923년 1월 6400자에 달하는 의열단 선언서인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했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 길림에서 김원봉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단체로 '정의의 사를 맹렬히 실행한다'는 그동안 온건하고 미온적인 독립운동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진 급진적인 목적의 단체이다. 이 선언서는 의열단의 독립운동이념과 방략을 이론화해 천명한 선언서로 의열단의 정신적 지주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올해는 의열단 선언서인 조선혁명선언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절의란 절개와 의리를 말한다. 절개는 굳은 지조로 굳건하고 날카로운 기상을 말한다. 의리란 사람으로 지켜야 할 바른길로 처신에 있어서 언제나 공명정대하고 조건과 상황이 달라져도 그 마음이 항상 일정한 것을 말하며 의로운 일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결단력과 실천력을 갖는 깨끗한 정신이다. 우리 대전에 연연히 이어 내려오는 정신은 바로 이 의(義)로움이 아닐까?

주변 지인에게 물었다. 대전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분은 '대전은 포용력이다'. '전국 어디 살아보아도 대전만큼 살기 편한 곳이 없었다. 지역색인 텃세도 없이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화합하여 사는 도시가 대전이다.'라고 하셨다. 대전의 이 포용력은 어디서 오는가? 사사로운 분별이 없는 의로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대에 대전의 정신이 더욱 절실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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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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