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공학박사 |
21세기 최악의 유행병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 코로나가 떠오를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6억 명이 확진되고 6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중반 유행했던 흑사병은 40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유행병이 있다. 이 병은 타액이나 공기로 전염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도 무관하고, 단기간 내 사망하는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간다. 이 병의 이름은 '비만'이다.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심장질환 등 많은 질병을 유발하며 사망률을 급격히 높인다. 우리는 아직 비만의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매년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1~2주 후에 그 결과보고서가 나온다. 그동안은 새로운 증상이 발견되지는 않을까 초조하다. 평소의 내 체형은 약간 배가 나왔을 뿐, 많이 마른 편으로 보이는데 결과엔 늘 비만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약 25억 명이 과체중 및 비만에 해당하기에. 살찐 현대인들이 부쩍 많아진 현상은 필요한 열량보다 많이 먹기 때문이거나 강도 높은 운동이나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서다. 어쩌면 그보다는 늦은 시간까지 즐기는 음주 및 간식의 영향이 더 클 듯하다.
리처드 존슨 콜로라도대 의대 교수는 비만의 원인을 '프럭토스'에서 찾았다. 프럭토스는 탄수화물의 일종으로 과일, 꿀 등에 들어있는 주요 당류를 일컫는다. 쌀밥이나 빵 등에 들어있는 포도당이 체내에서 프럭토스로 전환되기도 한다. 프럭토스는 지방을 저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프럭토스의 대사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인 요산 수치가 높아지면 혈압까지 상승해 만성질환을 유발한다. 과거엔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줬던 프럭토스가 오늘날엔 당뇨와 비만을 유발하는 독이 된 것이다.
인류는 빙하기를 거치며 서서히 지방을 축적하는 체질로 진화했다. 추워진 지구엔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식량난에 대비해 인체는 몸속에 지방을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동물의 진화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듯, 인간 역시 생존에 최적화된 체질로 변화했다. 농업혁명 이후 인간은 전례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 농경사회가 형성되면서 안정적으로 농작물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 너무 급격한 변화였다. 현대에는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날 리 만무한데도 인체는 빙하기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방을 저장하고 있다.
올해에는 복부 비만을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우선 지방이나 탄수화물, 단백질보다도 단맛을 내는 단당류 섭취를 조심하겠다. 당류가 포함된 식음료는 물론이고, 당류가 함유된 과일 역시 가려 먹겠다. 무화과, 망고, 청포도, 수박 등 프럭토스 함량이 높은 과일은 적당량을 섭취하고, 그 대신 칼륨과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간 키위, 블루베리, 딸기, 체리 등 비교적 단당류 함량이 낮은 과일을 많이 먹어야겠다.
초록색은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정서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초록색 농식품도 마찬가지다. 초록 농작물 속 풍부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피로 해소, 면역력 증강 등 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젠 케일, 브로콜리, 파슬리, 시금치, 셀러리, 완두콩, 부추, 미나리, 깻잎, 오이, 매생이, 매실 등 녹색 채소와 더욱 친해져야겠다. 그보다는 밤늦게 먹는 술과 안주를 줄이는 게 최상책일 듯.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복 많이 지으십시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