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공후사' 말보다 실천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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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공후사' 말보다 실천이 먼저입니다

홍승표/전 경기도 관광공사 사장

  • 승인 2022-12-29 16:24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경기관광공사에서 일할 때였지요.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었는데, 마케팅처장이 중국 담당 직원과 함께 들어와 약간 망설이다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 우선 물 한잔 드시지요."

제가 웃으며 한마디 던졌지요.

"뜬금없이 물은 왜? 윤 박사가 '예쯔(葉子)'랑 결혼한다는 얘기를 하려고?"



"네?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 얼마 전, 내가 강 처장에게 윤 박사 내년에 결혼한다는 말 없더냐고 물었을 때 아직 애인도 없는데 무슨 말이냐고 그랬지? 하지만 이미 감 잡고 있었네."

두 사람은 상상조차 못 했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안도하는 눈치였습니다.

경기관광공사는 경기도 관광 홍보를 위해 '해외마케팅부'를 두고, 베이징·상하이·타이베이·하노이 등에 현지 주재원을 두고 있지요. 상하이 현지 마케팅을 하는 날 아침인데, 한국관광공사 상하이 지사장이 저를 찾았습니다. 한 시간 전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쯔(葉子)에게 가라고 했는데도 한사코 오후 설명회를 마치고 가겠다고 했다는 것이었지요. 아들이든 딸이든 한 자녀 출산만 허용하는 중국이니 외동딸인 그가 얼마나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까요. 그만큼 슬픔도 컸을 겁니다. 그런데도 상하이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설명회를 마친 뒤에야 장례를 모시기 위해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했지요.

안 그래도 똑 소리 나게 일 잘하고 성실해 훌륭한 주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일이 있고 난 뒤 그를 더 신뢰하게 됐습니다. 상하이 지사장도 한국관광공사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저는 꿈도 꾸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곤 했지요. 중국 담당 윤 박사와도 일 처리 호흡이 잘 맞아 중국 관광업계의 극찬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 사이가 각별하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지요.

"사장님! 윤 박사가 예쯔랑 결혼한다 했더니 상하이 지사장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몰아쉰 뒤, 윤 박사 보고 '도둑놈'이라 했습니다."

일을 잘하는 직원이 그만두게 됐으니 그럴 만했지요. 이듬해 봄, 저는 두 사람의 결혼 선물로 주례를 섰습니다. 지금은 아들 낳고 잘 살고 있으니 축하할 일이지요.

파주에서 일할 때는 온 나라가 구제역 창궐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구제역이 발생한 파주는 피해 정도가 특히 심했지요. 농업기술센터에 임시 사무실을 차리고 방역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면서 뛰어다닐 무렵,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직원들에게 설날 하루는 차례를 지내면서 쉬라고 하고 저는 고향에 가지 못한 채 현장을 지켰지요. 설날 아침, 피해 지역을 돌아보고 사무실에 돌아와 포장한 떡국을 끓여 먹고 다시 매몰 현장에 나갔습니다. 어둠이 내릴 무렵이 되니 유난히 허기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설날인데도 문을 연 국숫집이 보였습니다. 얼른 들어가 뚝딱 한 그릇을 비우고 또 한 그릇을 시켰더니 할머니가 측은하다는 듯 저를 바라보더군요. 아내와 통화하면서 잠시 울컥했습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려놓고 희생하려는 마음이 내재해 있지 않으면 실천이 어렵지요. 오랜 세월 공직자로 살다 보니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냐?'는 핀잔을 꽤 듣고 살았습니다. 공직자로서는 성취감이 있었지만, 가장(家長)으로는 빵점이었지요.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말로는 희생·봉사를 외치는 사람이 많으나 손해날 일은 하지 않는 게 오늘의 현실이고 선공후사 정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또한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데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든 세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의 이태원 참사 이후, 장관이나 구청장이나 경찰서장 등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요. 나보다는 세상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공직자라면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홍승표/전 경기도 관광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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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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