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형사4부(부장판사 구창모)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논산지원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A(62)씨에게 12월 21일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택시기사 B씨에게 자신이 상당한 재력가인 것처럼 행세하며 2018년 11월 200만원을 빌린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 7월까지 20차례에 걸쳐 총 8435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원심은 피고 A씨가 법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혀 자백한 것으로 간주해 그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가 말하는 '죽을 죄를 지었다'라는 자백성 발언이 B씨를 고의로 속여 돈을 가로챘다는 혐의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와 반성문의 맞춤법과 문장을 보면 A씨가 검찰의 기소내용조차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의심하게 할 정도의 문해력이어서 형사소송법의 자백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택시기사 B씨는 "서울에 빌딩도 있고, 전국에 땅이 많다"는 A씨의 단순한 발언에 속았다고 주장하나, 구체성이나 현실성을 담보할 추가 정보를 제공받은 것이 전혀 없어 '곳간에 쌓여 있는 금송아지'에 속았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증거로 제출된 CD 상의 통화 녹음에 대한 증거조사를 실시해 검찰이 제출한 수사보고서와 제법 다른 대화가 오간 사실을 밝혀냈다. B씨에 대한 재판부의 심문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건냈다는 피해금 500만원이 실은 사기의 정황이 없음에도 공소사실에 포함돼 B씨의 진술이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구창모 부장판사는 "A씨의 주소지가 아닌 46㎞ 떨어진 곳에서 조사와 기소가 이뤄져 헌법상 무죄추정 원리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면이 있다"며 "A씨의 행위가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27일 상고장을 접수했다.
한편, 대전지법 형사4부는 지난달에는 1700만원 상당의 장물시계를 처분한 혐의로 기소된 금은방 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경찰의 내사보고서가 시행일자를 조작한 사실상 '허위공문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