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모두를 기억하는 한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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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모두를 기억하는 한해가 되기를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 승인 2022-12-27 18:07
  • 수정 2022-12-27 18:18
  • 신문게재 2022-12-28 6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몇 일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도가 얼어서 물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오래된 빌라의 꼭대기층에 세들어 살고 있어서 낡은 집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으면서 살고 있었지만 그것도 경험이려니 생각하고 잘 대처해 보라는 이야기 외에는 별로 해준 것이 없었다. 더구나 새해 1월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예정되어 있어 더욱 난감한 모양이다. 아무런 사회 경험이 없는 새내기 직장생활하는 아이가 수도관이 터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할 것은 자명했다, 전화기 너머 들려 오는 목소리에 당황해 하는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나도 이런 저런 전시일정과 회의 등이 있어서 올라갈 형편이 안되고 남편 또한 일정이 빽빽하다. 집주인과 상의해서 잘 해결해 보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울컥 밀려온다. 성인이니까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어디 부모 마음이 교과서에 나오는 가르침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으랴. 다음날은 설상가상으로 계량기가 동파되어서 완전히 깨져 버렸다고 다시 전화가 왔다. 집주인에게 전화하니 어제만 해도 '녹으면 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서 왜 자꾸 전화를 하냐, 귀찮아 죽겠다, 세사는 사람이 고쳐야지 집주인이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딸같은 아이에게 한바탕 해 댄 모양이다. 난방도 안되고 물도 안나오니 친구집을 전전하던 끝에 서울시에서 계량기가 동파된 경우에는 무상으로 교체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연락을 취해서 계량기 교체해 주는 분들이 왔는데 계량기가 동파되기 전에도 물이 안나오는 상태였으니 계량기만 교체한다고 물이 제대로 나오 것같지가 않았다. 주위에서는 벽 속에 들어 있는 수도관의 언 부분을 찾아서 녹이는데 많으면 몇백만원이 들 수도 있다고 겁을 잔뜩 주어서 다음 달에 이사나갈 집에 그런 비용문제로 집주인과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아이가 몇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잔 모양이다. 저녁때 쯤 전화가 왔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밝다.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계량기 고치는 분들이 와서 자초지정 사정을 듣더니 계량기 교체하고 나서 뜨거운 물 끓여 오라고 해서 여기 저기 붓고 배관을 조정하고 하더니 드디어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곤 해결해 주었으니 커피나 한잔 달라고 해서 커피를 사러 갔더니 수퍼 주인이 그분들 정말 좋은 분들이라 하면서 갖다 드리라고 과자도 함께 주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내 주변의 일들을 보면 항상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비가 이렇게 퍼붓는데 시내의 모든 물들이 다 하수구로 빠지도록 한 사람은 누구일까? 지하차도에는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한 사람은 누굴일까? 150만명의 대전 사람들이 매일 변기에서 버튼 눌러서 내려 보내는 오수들이 한군데로 모이고 정화를 해서 내보내는 거대한 일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자동차라는 물건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보다 그것을 전국에 다니도록 길을 모두 포장하자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이런 일이 되도록 한 분들은 모든 익명의 사람들이다. 굳이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분들의 모든 수고와 진정성이 모여서 이 거대한 사회가 돌아가고 있지 않는가? 물이 나오는데 그냐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번 기회가 우리 아이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은 개인의 예술적 지향을 언제나 강조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는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묻히고 만다. 캔버스 만드는 분, 붓 만드는 분, 물감 만드는 사람, 액자 끼워 주는 분, 전시장 공사하는 분, 팜프렛 만드는데 수고하는 인쇄소 사람들 모두가 그림 한 장에 스미어져 있는 익명의 수고로움이라 할 것이다. 나 스스로도 한 장의 그림에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삶이 담겨 있고 그렇게 서로 얽히어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익명의 모두가 수고로움에 늘 감사하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조력자들을 다시 생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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