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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하나부터 시작한다/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줄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다./ …중략…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삶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준다./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나는 새벽에 명상을 하다 가끔 이 시를 떠올리곤 한다. 아기가 일어서 내딛는 첫걸음이 엄마에게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면, 인류에게는 원숭이에서 직립보행하는 인간으로의 상징적 첫걸음이었다. 우리가 티셔츠, 컵, 카페 벽에 '처음처럼'을 경구처럼 새겼을 때, 신이 선물한 희망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그런 것이다. 인류라는 종이 무의식의 뇌에 쌓아온 두려움과 공포가 앞길을 주저하게 할 때, 누군가 내딛은 첫걸음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올해도 책상 달력은 12월 끝에 와 있다.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란 성경구절이 아니라 '계획은 거창했으나 돌아보니 남는 건 없네.'로 올해가 마무리될 지도 모르겠다.
'끝'에 관해서는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노래한 시가 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중략…/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누군가 끝자락에 선 듯한 마음이 들 때 이 시는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12월의 달력은 끝을 표시하지만 뒷장을 넘기면 꼭 내년의 1월이 한 장 더 붙어있다. 시작과 끝은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꼬리를 물고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마음은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꼭 두 가지 생각이 대립될 때 마음이 심장의 박동처럼 고동친다.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가?', '이쯤에서 끝장을 볼 것인가?' 이런 생각이 음양으로 대립될 때 마음이 작동한다. 두 음양의 균형추처럼…. 실체도 없는 것이 괴로울 때나 슬플 때, 갈등으로 치달을 때 중심을 잡아주려고 뜬구름처럼 일어난다. 우리 인지하는 뇌의 중심에 형체가 없는 마음이 있다니….
서양의 학문이 인지하는 뇌를 살폈다면 동양의 인문학에서는 형체가 없는 마음을 살펴 '중용'의 도를 이야기했다. 만약 서양의 직선적 시간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다면 마음은 그 중간쯤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처음처럼'을 되뇌기도 하고, 더 이상 앞길이 안보일 때,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이라며 다독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자작시가 있다.
"그녀가 그의 발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웠다./ 그도 그러했다./ 그녀가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하며…./발바닥에는 금이 있어 손금으로 맞대어본다./그대의 운명선이 나에게 닿았다면 76년마다 한바퀴 돌아온다는 헬리혜성의 긴 꼬리표같은 지문일진데/닳고 달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냄새와 새벽 출근길 종종걸음으로 내려갔을 굳은살이/ 그 자리에 무늬만 지문인양 남아있다./그녀가 헬리혜성을 타고 긴 여행에서 다녀온 꿈을 꾸고는/우리 환이 되어요/서로의 입술로 발끝을 물고/ 그대의 시작이 나의 끝이 되고/나의 시작이 그대의 끝이 되도록/우리 물고 물리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마음을 가질 거예요./그의 눈물이 그녀의 발바닥 깊은 고랑을 흐른다."
시작과 끝이 늘 물고 물려서 회전하는 마음처럼 인생의 수레바퀴를 굴려가야겠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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