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 지난 5년, 문화에 대해 얼마나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왔는지 새삼 뒤를 돌아보게 한다.
문화는 그 자체가 지닌 뜨거운 체온과는 달리 정치마당에서는 언제나 소외되게 마련이어서 역대 정권,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도 일반인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감추어져 왔으며 5년 내내 적폐청산, 비핵화 남북문제,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 정권 차원에 집중 하다보니 문화예술에 관한 정책이나 전략, 앞으로의 방침에 대책들이 없었던 걸 보면 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 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절실한 것은 정치가 문화에 정을 주는 일이다
산업화시대 정치가 경제를 편애(偏愛)해 오는 동안 국민들의 문화교육과 문화의식은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하면서 가장 없는 것>이 옛날에는 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다. 정치적인 힘이 지금까지는 경제, 사회 각 분야를 키워왔다면 지금부터는 문화를 키울 차례다.
한나라의 문화가 그 나라의 역사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슬기요 잠재력이라면 문화는 곧 정치의 추진력도 된다.
정치더러 문화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문화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문화 발전은 곧 정치, 경제 각 분야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옛 왕조시대에 우리의 정치가들은 모두 문화예술인 이었다. 시를 쓰고 서화를 즐겼다. 문화 발전이 정치발전이듯이 오늘의 시대에는 문화적 소양은 정치인의 자질을 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가가 극장에 가야 하는 까닭은 또 있다.
당나라 시인 장열(張悅)의 시에는 송시문국정(誦詩聞國政)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옛날 중국의 조정에서는 각지에 채시관(採詩官)을 파견하여 민요를 수집했다. 천자(天子)는 이 민요를 듣고 백성들의 민심을 알고 살펴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의 세느강에 걸린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이 퐁네프요, 중세(中世) 때 이 다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이 모여 민정을 반영하는 노래를 불렀었다.
현대에는 시가 여러 예술형태로 다양화되었을 뿐이다. 모든 예술은 사회현실의 엑스(X)다. 병원에서 촬영한 X선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명한 현실의 투시다. 정치가 귀를 기울여야 할 모든 목소리가 예술 작품 속에 어떤 형태로든 다 들어있다. 예술은 귀담지 않아도 괜찮을 소리를 노래하지 않는다.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견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술가는 사람들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빌려준다.
국민들과 함께 공정과 상식, 정의로 탄생한 윤석열 대통령 시대, 169석 거대 야당의 국회는 옛날 중국의 조정에서는 각지에 채시관(採詩官)을 파견하여 민요를 수집하고 이 민요를 듣고 백성들의 민심을 살펴 선정(善政)을 펼쳤다는 것처럼 가짜뉴스로 사회불안을 조성하지 말고 국회의원 본인의 선거구에 가서 민의를 살피고 문학 작품이나 미술작품, 무대예술을 통해 밝은 세상을 읽어야 한다.
이것은 곧 정도(正道)의 정치요 기본이다. 또 정치가 문화에 정을 주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남계 조종국 / 원로 서예가, 전 대전시의회 의장
조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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