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
긴 양육과 교육 기간에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길을 차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쌓아 놓기 위해 안달이다. 긴 시간을 공부했어도 행복한 삶을 추구할 줄을 모른다. 올바른 정신과 심미적 정서를 기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나의 노동의 결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기본적 삶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개인의 의견을 공유하는 시대이며, 수백 개의 유선 방송이 24시간 방송을 하고 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은 내용이 너무 많다. 사건의 저변에는 비인간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음모가 깔려있다. 미래는 로봇 산업 시대로 인간의 노동이 줄어들고 심미적 정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시대로 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하는 현상은 아주 바람직하다. 역사상 인구 대비 시인이 가장 많은 시대에 와있다. 시를 쓰는 것은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시는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울림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예술 활동은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글쓰기는 연필도 종이도 필요 없다. 핸드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심미적 정서를 기르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미래 사회는 시인이 많은 시민(詩民)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민사회'는 시인천국(詩人天國)을 의미한다.
농부도 시인이고, 운전기사도 시인이며, 의사도 시인이고, 간호사도 시인이었으면 좋겠다. 시장 아줌마도 시인이고 식당 주인도 시인이라면 이 세상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 사회일까? 시는 자기 본분에 충실할 때만 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시인이어야 하며, 경찰 시인, 검사 시인, 대통령 시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 모두가 시인이 되는 '시민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챗GPT에게 시와 소설을 써보라 했더니 단숨에 짧은 글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또 인간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더니 "인간이 우리(AI)를 창조했다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인간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AI는 지적인 존재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조선일보 12. 15). 매우 위험한 존재라 생각하면서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시 창작을 AI에 맡겨서는 안 된다. 시는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미적 정서에 가치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집을 읽으며 공감하는 정서와 시를 창작하며 경험하는 창조적 정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문화적 정서 생활도 의미가 있지만, 시를 창작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은 단순히 미적 성취감을 넘어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 진정한 예술적 정서는 감상이 아니라 창조적 기쁨을 누리는 데 있다고 본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었다. 시인 사회가 죽어서나 이루어지는 허구의 사회가 아닌 '살아있는 시인 사회'를 이루는 것이 인류 문명이 지향하는 목적이 되기를 바란다. 메타버스 시대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혼돈의 시대에 인간성이 없는 삭막한 사회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누리는 '시민사회'가 이루어지는 날 지구는 평화롭게 자전과 공전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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