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미 대전탄방초등학교 교사 |
현장 체험학습 때면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1학기 현장 체험학습 신청서를 받는 데 남학생 1명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불참을 표시해서 냈다. 무슨 일이 있냐고 했더니 그냥 가기 싫다고 했다. 아무리 붙들고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같이 살고 계신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학교 바로 앞에 사셔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이 할미도 소풍을 보내려고 했는데유. 아무리 달래도 안 간다고 하네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우리 ○○가 멀미가 심해유. 지 애미가 얘를 낳다가 그만 하늘나라로 갔어유. 거의 핏덩이부터 내가 키웠지유. 저도 이 앞 노점에서 나물이나 그런 거 팔고 그걸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 라니께유. 그러다 보니께 우리 ○○가 차를 타본 적이 거의 없슈. 다른 애들 다 가는 가족 여행은 고사하고 버스 타고 어디 나들이 가본 적도 없어유. 그래서 작년에 1학년 입학해서 소풍 가는디 처음 버스라는 것을 타봐서 그런지 계속 토해서 울구불구 출발도 못하고 도로 내리고 못 가겠다고 아주 난리 났었슈.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가겠다고 막무가내네유."
사정이 딱했다. 부모의 부재로 할머니 손에서 키워져 버스 한 번 승용차 한 번 제대로 타본 적이 없어 차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이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안 가면 학교 다니는 동안 계속 못 갈 것 같아 며칠을 어르고 달래 결국 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현장체험학습 당일 40분 동안 버스를 타야 하는데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날 할머니에게 붙이는 어린이용 멀미약을 붙여달라고 부탁을 드려놓고 혹시나 싶어 나도 마시는 멀미약, 검정 비닐봉투, 여 벌의 옷 등을 따로 준비했다. 버스 승차시간이 다 돼갔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재잘재잘 즐거운 목소리로 웃고 떠들며 차에 탔다. ○○는 차 맨 앞자리에 내 바로 옆에 앉도록 했다. 차에 오르기 전 벌써 ○○는 검정비닐 봉투를 달라고 했다.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좌석에 앉아 비닐봉투를 받자마자 ○○는 봉투 손잡이 양쪽을 두 귀에 걸었다. 그리고 계속 마른 구토를 해대는 것이었다.
"○○야. 정 힘들면 가지 말까? 2학기에 다시 가니까 그때 가볼까?"
"아니요. 선생님 저 참고 잘 가 볼게요. 가서 과자랑 김밥 먹고 싶어요."
소풍날이라고 특별히 할머니가 싸 준 김밥과 과자가 ○○로 하여금 버티게 해 주는 힘이었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멀미약 기운 탓인지 속이 편해져서인지 구토는 안 하고 잠들어 있었다. 검정비닐 봉투를 양쪽 귀에 걸어둔 채로 말이다. 체험학습 장소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할머니가 싸준 김밥과 과자를 먹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 타게 됐다. 다시 멀미가 시작 돼 먹은 걸 다시 다 토할까봐 내심 걱정이 됐다. 다행하게도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다시 ○○의 귀에 건 비닐봉투에 토사물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는 현장체험학습에 빠지지 않고 가게 됐다. 예방조치만 미리미리 해 놓으면 멀미를 심하게 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게 됐다고 그 이후의 담임선생님들에게 들었다. 지금도 그 당시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 뒤로 조금 더 신경 써서 그 아이를 바라봐 주고 챙겨주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 그 아이가 어찌 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다부진 모습은 기억이 난다. 지금쯤 스무 살 넘은 청년이 돼 있을 ○○가 누구보다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윤미 대전탄방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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