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교수 |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수많은 할로윈 인파가 좁은 골목으로 몰려 150명이 넘는 귀한 생명을 잃었다. 국가적인 재난에 너무나도 놀랍고 가슴이 아프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가족들의 심정을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런데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오늘,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나 경찰 조직 중 책임질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내 탓입니다!"라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한 선악과를 따 먹고서 남 탓으로 책임을 돌린 사건이 나온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학생들이 남 탓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에 지각한 것은 엄마가 일찍 안 깨워줘서 그렇고 숙제를 못 한 것은 선생님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나도 가끔 남 탓을 한다. 우리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 것은 나랏님 탓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사실로 믿어 버린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 아합왕은 자신과 왕비의 우상숭배와 폭정 속에 3년째 이어진 가뭄과 기근을 겪고 있을 때 선지자 엘리야를 만나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네가 왔느냐?"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려 버렸다. 이렇게 국가의 지도자가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불쌍한 백성들이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물론 "이 사태의 책임은 내 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국정의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을 당연시했던 지도자들도 있었다. 한국전쟁 중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The buck stops here!)"는 문구의 팻말을 집무실에 놓았다. 이것이 그의 평생 좌우명이었다. 그는 실제 이런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거나 아니면 떠나라" 비슷하게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도 이 문구를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놓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도 책임지는 지도자의 품격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09년 네덜란드의 빔 콕 총리는 하나의 국제적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며 내각 총사퇴를 발표했다. 1995년 보스니아에서 약 7500명의 이슬람계 주민들이 세르비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추후 이 사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와 유엔이 공동책임이 있다는 보고서가 제출됐는데, 1주일 만에 콕 총리는 이 사태를 책임지고 내각 총사퇴를 단행했다. 당시 60세였던 콕 총리는 높은 인기로 연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과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학살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치 지도자가 내각 총사퇴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내 탓입니다"라는 말에 인색하며 책임 전가에 급급한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 민족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는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객이다"라고 하셨다. 세상살이하면서 "내 탓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은 세상을 더욱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자가 먼저 "내 탓입니다!"를 외치며 공동체와 개인의 죄를 반성하고 희생과 헌신의 본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국민의 호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이 마음 놓고 "내 탓입니다"라고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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