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일본 감정기에 철도가 대전을 분기점으로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나누어졌다. 뒷날 고속도로도 그렇게 놓였다. 대전에서 교통망이 동과 서로 나뉘니 만남과 이별은 이곳의 브랜드가 되었다.
대전 블루스의 작사가 최치수는 14년간 대전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숱한 이별의 장면을 눈에 담았을 테다. 그 기억을 안고 신세기 레코드 회사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목포에 일 갔다가 대전으로 돌아와 부산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0시를 넘긴 시간, 소록소록 내리는 보슬비 소리는 한없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불현듯 대전발 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 플랫폼에서 인연의 마침표를 찍는듯한 청춘남녀의 애끓는 이별 장면이 기억의 틈을 밀고 툭 튀어나왔다. 그 자리에서 작사하고는 작곡을 의뢰했다. 그렇게 탄생한 대전 블루스는 안정애가 불러 히트했고 조용필의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의 미시시피 하구에서 발원한 블루스는 슬픈 삶의 흑인에게는 위로이자 흥을 일으키는 음악이었다. 가수 에릭 크렙톤은 블루스를 음악의 고향이라 했을 정도로 블루스는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다.
동양철학의 정수(精髓)인 주역을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s)이라 한다. 주역은 태극 음양 사상 팔괘 64괘로 이어지는 체계를 가지고 변화를 읽는다. 그중 주역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팔괘에는 천지의 운행원리이며 태극기의 모태인 복희8괘와 인생사에 활용이 되는 문왕8괘가 있다. 19세기 말 계룡산 연산(連山) 땅 김일부에 의해 후천개벽 사상의 토대가 된 정역8괘가 태어났다.
팔괘 중 간괘(艮卦)는 산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동북방인 간방에 속하며 계룡산을 간산이라고도 한다. '주역 설괘전'에 의하면 간(艮)에는 '그친다', '마침과 시작을 이루다'는 뜻이 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선천과 후천은 학인마다 의미와 시점이 다르지만, 그 경계를 기준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짜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전은 이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정역8괘의 발상지이며 간괘로 시작하는 고대 하라의 연산역(連山易)과 이름이 같은 연산이 계룡산으로 연결되어 있고, 역(易)을 매개로 유불선의 회통을 주장한 탄허스님이 창건했던 계룡산 자광사도 학하리에 있다. 둔산의 어머니뻘인 대둔산의 석천암에서 발양되어 '40~60년대에 역도(易道)를 크게 펼쳤던 '야산' 주역도 유성에서 숨결을 이어가고 있다. 계룡산의 이름에는 갑사 삼성각의 주련(鷄化爲龍甲天下)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이 변화하여 용이 되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뜻도 있다.
애틋한 사연은 이미 지나갔지만 대전 블루스는 '그렇지 아니한 듯하나 그러한 것처럼' 대전에서 만남과 이별의 의미가 증폭되어 대전의 소중한 브랜드로 남았다. 기다림이 없어 이별이 곧 한과 화가 되는 세상은 흘려보내고, 이별에도 기다림이 있기에 더불어 살아가고픈 삶터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미 남녀평등, 노화혁명, 인공지능 확산, 정보기술혁명, 기후변화 등 후천시대에 걸맞은 문명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중에 올해는 이상기후, 남녀갈등, 코로나 위기 후 경제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태원 압사 사건 등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 다가올 시간에는 온갖 갈등과 다툼이 그치고 기다림이 있기에 흥겨운 리듬의 대전 블루스가 흐르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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