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행복은 즐거움과 만족감에서 온다. 즐거움을 한자어로 표기하면 쾌락(快樂)이다. 그것을 다시 풀이하면, 감성의 만족이나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한 감정을 이른다. 유쾌는 즐겁고 상쾌한 것이다. 유사한 의미임에도 쾌락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좋지 않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다. 행복하다면 축하할 일로, 쾌락을 즐긴다면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뭔가 차이가 있음일까?
우리가 쾌감을 얻는 것은 무척 다양하다. 친절, 웃음, 위로, 칭찬, 성취, 발견, 독서, 명상, 목욕, 숙면, 운동, 게임, 쾌변, 취미활동, 욕구 충족 등으로 즐거울 수 있고, 멋진 풍광이나 예술품을 만나도 즐겁다. 그런가 하면, 공포, 폭력, 학대, 험담, 도박, 마약 등에서 쾌감을 얻기도 한다. 나열해 놓고 보니 뭔가 갈림이 있다. 달콤하지만 지속성이 없거나 독성이 있는 것은 결국 좋은 즐거움이 아니다. 허무하고 의미 없는 것은 바람직한 쾌감이 아니다. 다른 사람 행복을 해치거나 불쾌하게 하는 것 또한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 종말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즐길만한 것이 못된다.
또 하나는 즐거움의 속성 때문 아닐까? 필자가 강조하는 문화의 양극지향성이다. 계속해서 즐거움을 쫓는 것이다. 쾌락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데에 허물이 있는 것이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지 않는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예전에는 건전한 즐거움도 경계했다. 글줄이나 읽으면 극도로 자제하려 노력한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해서 즐거움을 멀리한다. 완물상지(玩物喪志)는 <서경(書經)> 여오(旅獒)에서 유래했다. 천하를 통일한 은나라 상왕(商王)에게 태보(太保)가 충언으로 지어 올린 글에 실려 있다. 사람을 희롱하면 덕을 잃고, 물건을 희롱하면 뜻을 잃는다(玩人喪德, 玩物喪志.)고 한다.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에 마음이 쏠리면 자신의 뜻을 잃는다. 본연의 자세를 잃을 정도로 즐거움에 몰두해서야 되겠는가? 정사를 소홀히 할까 경계한 용어다. 이것이 후대로 이어져 제왕의 허물을 신료가 만류하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였다.
조선의 임금은 한결같이 명필이었다고 전한다. 3살 때부터 성군이 되기 위한 조기교육 받아, 서예가 기본이자 필수였기 때문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현판 중 임금의 글씨가 120여 점 남아있다. 어필(임금 친필), 예필(왕세자 친필) 현판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조선 전기 현판이 없는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병란으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바로 '완물상지'다. 시서화 즐기는 것을 신료들이 극도로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자 교육에서 시서화 잘하는 것이 성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도 한다. 성석린(成石璘, 1338년~1423년)이 양녕대군에게 한 말이다. "당 태종(626 ~ 649)과 송 휘종(1100 ~ 1125) 두 사람 모두 글씨를 잘 썼지만 태종은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된 허물이 있고, 송 휘종은 망국의 군주였다."
왕에게만 적용한 것은 아닌 듯하다. 강희안(姜希顔, 1418 ~ 1464, 호조참이 황해도 관찰사)은 "글씨와 그림은 천한 재주일 뿐, 이것이 후세에 전해진다면 내 이름만 욕되게 한다." 해서 서화에 낙관하지 않았다. 선비가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북송의 철학자 정이의 말에 근거한다. 정이는 시서화를 두고 "오로지 남의 이목을 즐겁게 하는 배우와 다를 바 없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을 천한 것으로 생각했다. 강희안 자신은 시서화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능통하였다. 더해서 원예에 심취하여 많은 작물을 가꾸었으며, 감상하고 기르는 방법을 서술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성석린의 말과 다르게 성군은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조선의 세종, 문종, 성종 등 많은 임금이 그러했다. 물론 연산군 같은 폭군도 미술을 몹시 사랑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선비가 학문과 서예에 조예가 깊음은 물론 사군자와 음률은 교양 필수였다. 모든 것에는 조화로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사람이 가장 선호한다는 부, 명예, 권력도 마찬가지다.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멈출 줄 알아야한다. 내면의 조화, 남 또는 사회와의 어울림, 지속성 있고 행복으로 이어지는 쾌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 많은 격식이 더해지면 고품격 쾌락이 된다. 그것은 문화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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