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미 성동초 교사 |
"어? 나 알지?"하는 물음에 아이의 눈이 커진다. "나, 블라드 선생님이야."라고 이어진 말에 아이의 눈에는 웃음기가 번지며 이내 반가움이 보인다. 사실 이 학생은 성동초등학교 졸업생으로 초등학교 시절 나와의 인연은 없다.
아이를 보게 된 건 지난 여름의 어느 날이다. 현재 중학교 2학년으로 시험을 보고 일찍 끝나 모교에 방문했다는데, 하필 그날은 현장체험학습으로 담임선생님들은 모두 외부에 계셨고 학교엔 교과전담교사인 나만 남아있었다.
낯선 나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아이에게 재학 중인 학교 이름을 묻고, 예전에 근무했던 초등학교에서 한국어학급 담임을 맡아 한국어를 가르쳤던 외국인학생 중 블라드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기억해냈다. "너희 학교에 다니는 블라드 알아? 한국말 잘하지? 내가 가르쳤단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블라드와 친구라며 신기하게 나를 바라봤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시험으로 일찍 하교해 학부모교육에 참여하는 어머니를 따라 모교에 방문한 아이에게 아는 체를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처럼 우리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도 공통으로 아는 지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유대감을 느끼는 일이 종종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이 자신이 근무하는 복지시설에 소액이라도 매달 후원을 해주면 어떻겠냐고 권하길래, 그곳이 논산 어디에 있는 어떤 시설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매월 자동이체해두었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과의 연락도 끊겼지만, 워낙 소액이기도 하고 계좌이체를 해지하는 절차도 귀찮아서 그냥 유지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올해부터 근무하게 된 성동초등학교에는 장애로 거동이 어려워 등교하지 못하고 순회교육을 하는 학생들이 있고, 그 학생들이 소속된 곳이 그간 후원했던 복지시설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후원한 대상이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인생이란 노래 제목처럼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강하고 약한 끈으로 모두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부모, 형제자매처럼 강하게 연결된 인연도 있지만 학교와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와 동료, 때론 낙엽을 쓸다 인사를 건네는 경비 아저씨, 날씨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 동네 주민처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들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하고 약한 인연들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로 관계의 지평을 넓혀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 현장은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학교폭력, 아동학대, 교권침해 등 분쟁으로 비화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학교가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친구와 놀다 싸우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가 밉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좋은 점은 친구와 놀 수 있어서이고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시간이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밥을 먹어 몸이 성장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먹고 놀면서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마음이 성장하는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말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나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또한 나를 단련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로의 것을 조금씩 양보하고 함께 삶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로 인식한다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갈등과 어려움이 변화하고 단련하며 성장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면 의연하게 맞닥뜨리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아이의 삶도 어른의 삶도 인연과 인연이 만난 결과물임을 명심한다면, 해결해 나갈 지혜와 힘은 연결된 인연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송경미 성동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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