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국장 |
자존심과 꿈은 과감히 접고 자신을 위해 삶을 다시 설계하라는 내용을 시작하는 책인데, 이상하게 모두 40대 후반을 앞둔 ‘윤희진’과 비슷했다. 후배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눈이 풀리며 몸에 힘이 빠졌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오전 5시 전에 눈이 떠졌다. 늙어가는 걸 실감하지 못했는데, TV를 보면 한참 늙어 보이는 남성의 나이가 더 어렸다.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여러 변화가 생긴 업무나 조직, 인간관계 등에서는 예전과 같은 열정이 발산되지 않을 때였다. 다시 바꿔야 한다는 생각만 맴돌고 있는데, 책은 오히려 회사나 사회, 인간관계에서도 지위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말라고 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오히려 업무 지시를 받을 마음의 준비까지 하란다.
심지어 친구들과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지인과의 연결고리도 느슨하다 못해 풀릴 때가 됐고 이성들은 매력이 떨어진 당신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니 착각하지 말고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관을 서서히 준비하라고 했다.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글인데, 말 그대로 천명(天命: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한다. 40대까지는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대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2021년 7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총인구(5173만 8000명) 중 지천명 범위에 속하는 50대는 857만 6000여명에 달한다. 아직까진 사회 곳곳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제 버리고 비울 준비를 해야 한는 얘기에 공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래야 곧 다가올 이순(耳順)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천명보다 더 대단한 나이는 60대, 이순(耳順)이다.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707만 4000여명이 살아 계신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하고 세상을 읽는다니 마음 또한 하해(河海)와 같이 무한히 넓어지는 때다.
1963년생인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2023년 만 60세인 환갑이 된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1965년생이지만 실제 나이는 보름 후 만 59세, 아직까진 유효한 한국 나이로 60이다.
두 수장의 공통점은 많다. 지역에서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다가 국회의원에 여러 차례 당선돼 당에서 중책을 맡기도 했다. 조직을 위해 막말 등 정치인으로서 치명타를 입고 온갖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올해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에 당선돼 민선 8기 대전시와 충남도를 이끌고 있다.
임기 초부터 저돌적이고 과감함으로 주목을 받았고 인사와 예산권을 틀어쥐며 조직을 장악했으며 굵직한 현안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여러 성과를 냈다. 물론 이면에는 불필요한 이념 갈등과 편 가르기, 독주 등으로 ‘통 큰’ 리더십이 퇴색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민선 8기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는 2023년, 이순의 삶을 만나는 두 수장에게 포용과 관용이 필요할 때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정태춘&박은옥의 콘서트에서 정태춘 씨가 “저도 내년이면 70이 된다”고 했다. 70이면 마음을 쫓는다는 종심(從心)이다. 그의 아내인 박은옥 씨는 “깊은 고뇌로 10년 넘게 곡을 쓰지 않았던 정태춘 씨가 올해에만 30곡을 쓸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했다.
한 살을 더 먹는 2023년,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포용하면서도 ‘뜻을 세운다’는 이립(而立), 30대의 열정이 간절한 연말이다.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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