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 사회과학부 기자 |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부족했고, 아이들을 찾아내기란 더욱 힘들었다. 지역의 모든 아동 보호 기관에 연락을 취해 겨우 한 사례를 찾아냈지만 전화상으로 나를 꾸짖는 담당자의 말에 취재를 중단해야 했다.
"아직 아이들 출생신고 진행 중입니다. 기자님, 그렇게 급하게 취재하셔서 어떤 기사를 쓰시게요? 오히려 그런 조급함이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순간 울컥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오늘 기사를 무조건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죄책감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담당자는 "지금 알려 줄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들이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면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했고, 나는 기약 없는 약속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 연락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동안 출생 미등록 아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지 아이들이 왜 국가에 속하기 위해 이렇게 몸부림쳐도 법은 이들을 막고 서 있는지. 서울·부산·인천 등 출생미신고아동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수차례 교류하며 매일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후 5개월이 지났을까, 퇴근 하고 집으로 가던 중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알아챘다. 5개월 전 나에게 다시 연락을 준다던 아동 보호기관 담당자였다. 그는 "기자님, 제가 연락드린다고 했잖아요. 이제 취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한 번 만날까요?"라며 나의 부탁을 잊지 않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락한 것이다.
당장 퇴근길 버스에 내려 그가 있는 유성구로 달려갔다. 장장 3시간 40분 동안 카페에 앉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내가 공부해왔던 부분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원하는 전문가의 경험담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한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기사는 기자 혼자 작성한 것이 아니다. 몇 개월간 아이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취재에 동참해 준 그들이 없었다면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해낼 수 없었다. 연락을 준다던 약속을 지킨 그 담당자처럼 나도 아이들을 지켜준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기자와 많은 어른들이 바라듯 언젠간 모든 출생 미등록 아동이 안전하게 걱정 없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김지윤 사회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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