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약속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약속

김지윤 사회과학부 기자

  • 승인 2022-12-13 16:49
  • 신문게재 2022-12-14 1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다운로드
김지윤 사회과학부 기자
얼마 전부터 출생 미등록 아동에 대한 보도를 시작했다. 취재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과정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2월 오늘 당장에 기사를 써야 한다는 조급함에 부랴부랴 지역에 있는 출생미등록 아동을 찾아 나섰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부족했고, 아이들을 찾아내기란 더욱 힘들었다. 지역의 모든 아동 보호 기관에 연락을 취해 겨우 한 사례를 찾아냈지만 전화상으로 나를 꾸짖는 담당자의 말에 취재를 중단해야 했다.

"아직 아이들 출생신고 진행 중입니다. 기자님, 그렇게 급하게 취재하셔서 어떤 기사를 쓰시게요? 오히려 그런 조급함이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순간 울컥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오늘 기사를 무조건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죄책감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담당자는 "지금 알려 줄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들이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면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했고, 나는 기약 없는 약속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 연락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동안 출생 미등록 아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지 아이들이 왜 국가에 속하기 위해 이렇게 몸부림쳐도 법은 이들을 막고 서 있는지. 서울·부산·인천 등 출생미신고아동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수차례 교류하며 매일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후 5개월이 지났을까, 퇴근 하고 집으로 가던 중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알아챘다. 5개월 전 나에게 다시 연락을 준다던 아동 보호기관 담당자였다. 그는 "기자님, 제가 연락드린다고 했잖아요. 이제 취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한 번 만날까요?"라며 나의 부탁을 잊지 않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락한 것이다.

당장 퇴근길 버스에 내려 그가 있는 유성구로 달려갔다. 장장 3시간 40분 동안 카페에 앉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내가 공부해왔던 부분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원하는 전문가의 경험담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한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기사는 기자 혼자 작성한 것이 아니다. 몇 개월간 아이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취재에 동참해 준 그들이 없었다면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해낼 수 없었다. 연락을 준다던 약속을 지킨 그 담당자처럼 나도 아이들을 지켜준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기자와 많은 어른들이 바라듯 언젠간 모든 출생 미등록 아동이 안전하게 걱정 없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김지윤 사회과학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