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선생은 학생을 선택할 수 없다"는 명제가 공교육 현장에서 외면당할 때가 있다. '골치 아픈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을 은밀히 방출하려는 학교와 쫓겨난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들이지 않으려는 학교 간의 물밑 싸움에 아이들이 멍든다. '골치 아픈 문제아'를 학급에 받지 않으려고 용쓰던 담임선생들은 과연 사라지고 없어졌는가. 자신이 개설한 세미나를 듣겠다고 수강 신청한 학생에게 교수가 다른 선생의 교과목을 수강하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친절한 안내 서비스로 포장했으나 혹시 '논쟁 좋아하고 탐구심 강한' 불편한 학생을 자기 세미나에 들이지 않으려는 발상의 발로는 아닌가. 학년 학기 초. 다른 선생님들이 외면하고 회피하는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묵묵히 받아들이는 선생님들이 있다. "선생에게는 학생 선택권이 없다"라는 신념을 실행하는 선생님들이다. 불편함을 교사의 숙명이자 보람이라고 여기는 분들 덕분에 교육의 가치가 빛난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즈는 미국 국방성 1급 기밀문서였던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했다. 정부가 은폐한 베트남전의 진실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형사처벌을 염려한 자문 변호사들이 보도를 만류했다. 발행인과 편집국은 진실을 알리는 '불편한 선택'을 했다. 사흘째 보도를 하던 중 법원의 보도 중지 가처분 명령이 나왔다. 보도는 중단되었다.
진실은 숨겨진 송곳과 같아서 진실을 알리려는 언론을 막을 수 없었다. 이번엔 경쟁지였던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사내 변호사들이 만류했으나 워싱턴포스트 발행인과 편집국 역시 고뇌 속에서 '불편한 선택'을 했다. 6월 18일 보도 당일, 보도를 중지하라는 법원 명령이 나왔다. 6월 30일 미연방대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며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의 손을 들어줬다. 용기 있게 진실을 보도한 두 신문의 불편한 선택이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토대를 굳건하게 닦았다. 취재 현장에서 치열한 경쟁자로 살아가는 언론이 진실 보도를 위해 펼쳐 보인 아름다운 연대와 우정이었다.
MBC가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덜 알려진 사실도 있다. 대통령실이 MBC의 취재와 보도 행태를 문제 삼아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건 민주주의 규범과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한겨레, 경향신문은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두 신문은 전용기에 탑승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을 취재하는 쉬운 길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민항기로 캄보디아 프놈펜에 가서 대통령과 각국 정상의 외교 활동을 취재하고 다시 민항기를 갈아타고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불편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하는 여정도 불편한 개별 민항기였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은 두 신문사 취재 기자와 편집국에 불편했을 것이다. 전용기에서 취재할 수 있었을지 모를 정보를 놓쳤을 수 있다. 순방 외교의 성과들을 제때 획득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먹을 각오'를 만천하에 공언한 것이다.
많은 독자가 두 신문의 불편한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고 들었다. 독자들의 알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해 현장의 언론인들이 어떤 불편한 선택을 하고 얼마나 어렵게 정보를 취재해 보도하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한 것이다. 언론이 불편을 무릅쓰고 진실을 보도하려는 원칙에 충실할 때 독자들 역시 언제든지 한발 양보할 수 있다. 소식이 조금 늦는다거나 정보량이 조금 부족한들 어떠랴. 언론과 독자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언론 현장에서 발견하는 불편함의 힘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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