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민화는 향교 문화의 뿌리인 유교사상의 휴머니즘사상과 자연주의사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회화적으로 완성시킨 순수회화인 것인 동시에, 민화는 행운이 뒤따르기를 바라는 길상(吉祥)적 해석이나, 불교나 기독교 등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도상학(圖像學)적 해석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조형미나 회화적인 관점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화전 안내판 |
필자가 찾은 한밭도서관에 전시된 민화 역시 새나 매화가 소재로 된 그림이 많았다.
필자의 지인인 김창헌 교수가 자기 아내의 그림인 화조도 두 폭을 페이스북에 올려 자랑을 했기에 호기심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김교수의 부인 지명희 화백도 목련꽃에 원앙새를 그린 화조도와, 국화에 비둘기를 그린 화조도를 선 보였다.
지 화백의 화조도를 보는 순간 이규보의 '원앙희작(鴛鴦?作)'이란 시가 문득 생각났다.
원앙새를 소재로 했는데도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碧池春暖?舒紋 (푸른 연못 따스한 봄 주름 비단 무늬 펴고)
盡日雙浮不暫分 (종일 짝져 잠시도 떨어지질 않는구나.)
莫使美人容易見 (미인에게 손쉽게 보여주지 말려무나)
片時勿欲放郞君 (잠시라도 낭군을 놓아주려 않을 테니.)
이규보 시인은 봄날 물 불어 넘실대는 연못 위에 비단옷 곱게 차려입은 원앙 한 쌍이 하루 종일 물 위를 떠다니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제목에 '원앙희작'이란 단어를 붙였다. 왜 그랬을까?
원앙의 다정하게 노니는 모습을 아내가 보기라도 할 양이면 그녀도 사랑하는 남편 곁을 잠시라도 떠나려 하지 않겠기에 아내에게만은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림이기에 '희작'이란 단어를 제목에 붙였던 것이다.
예끼, 이 사람 응큼하기 짝이 없는 이규보.
아내가 살아 곁에 있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원앙의 정다운 모습을 아내가 볼까 봐 염려했다니. 어디 숨겨 놓은 여인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지명희 화백의 화조도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사진 왼쪽>. |
오늘 필자가 본 민화전시회는 12월 24일(토)까지 전시된다고 한다. 다른 화백들의 민화도 각자 개성이 돋보여 시선을 끌었으나 특히, 고경희 화백이나 봉희경 화백, 송옥순 화백, 이희자 화백, 주영희 화백의 '호작도' 그림, 조우현 화백의 '약리도' 그림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이들 화백들과 차 한 잔 나누며 민화 감상의 재미에 빠져보고 싶다.
주영희 화백의 호작도(익살스런 호랑이 모습이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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