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창작활동을 계기로 재조선 일본인을 주제로 작품활동 중인 배상순 작가. 한국과 일본의 실과 줄로 창작한 '샹들리에'는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배상순 작가 제공) |
지난달 일본 나고야에서 쓰지 아츠시(84) 씨를 함께 인터뷰한 배상순 작가는 가족이 있는 교토까지 먼 길을 남겨두고도 기자와 만나 조선에서 귀환한 일본인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일본에 정착해 작가 생활을 한 지 20여년 됐다. 2015년 대전 테미예술창작센터가 주관한 지역리서치프로젝트에 참가해 소제동 골목을 걸을 때 갖게 된 궁금증을 쫓아 현재까지 재조선 일본인을 주제로 창작을 하고 있다. 배 작가는 "한국 국적으로 교토에서 20년 남짓 거주하는 동안 모국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 국내에서 활동을 찾던 중 대전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라며 "소제동 골목을 걷는데 제가 일본에서 거주하던 교토의 마을과 너무 유사했고,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면서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당시 지역리서치프로젝트는 대전의 근대유산을 조사하고 예술가의 눈으로 재해석해 표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백방으로 재조선 일본인을 찾은 끝에 대전태생의 오쿠보 고조(84) 씨와 미츠이 카요(83) 등 대전출신 일본인 7명을 비롯해 재조선 일본인 10여 명을 인터뷰했다.
중앙로에서 바라본 대전역 모습의 사진 사이를 모형 화물열차가 통과하고 있다. 배상순 작가는 이를 통해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한일관계과 국민을 표현했다. (사진=배상순 작가 제공) |
2015년 대전역 지도 위에 실과 줄을 가지고 이들의 여정을 표현한 작품과 대전출신 일본인 3명의 인터뷰 영상을 시작으로 2016년 두 번째 리서치프로젝트에서는 1900년대 초 대전역 사진을 이용해 귀환 화물열차를 타고 떠나는 이들을 표현했다. 끝없이 마주 보는 철길은 한일 양국이 하나가 될수도 그렇다고 멀어질 수도 없는 운명을 표현했다.
그에게도 재조선 일본인에 대한 조사·창작을 그만둘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때가 있었다. 배 작가는 "패망을 맞아 살던 집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와 식민지출신이라는 멸시도 겪은 세대인데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 이상으로 강점기 조선에게 닥쳤을 고난을 어느 정도 생각하는지 회의가 들어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라며 "한참을 고민할 때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고 중요한 연구'라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서야 재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8년 한국과 일본의 실과 줄을 풀어헤쳐 실타래 형태로 만들어 조명을 비추어야 복잡하게 얽혀있는 존재가 드러나는 작품을 창작하고 '샹들리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샹들리에를 전시한 기획전의 타이틀은 'Moon-bow(달무지개)'이었다. 달빛에 의해 비치는 무지개를 말하는 것으로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KG+SELECT 아트 페스티벌과 공익재단법인 한창유·출문화재단이 후원해 교토 화랑에서 전시회와 심포지엄을 가졌고,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했다.
배 작가는 "조명을 비추고 확대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를 표현한 것이고, 실타래를 꼭 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보다 존재를 인정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의미"라며 "한일관계와 역사에서 그들은 작은 존재일지 모르나, 소중한 증인이다"고 설명했다.
일본 나고야=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