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와 공존]"실타래처럼 얽힌 그들, 역사의 증인"

[한일교류와 공존]"실타래처럼 얽힌 그들, 역사의 증인"

일본서 활동하는 배상순 작가 재조선 일본인 10여명 인터뷰
실타래와 평행의 기찻길 등으로 그들 예술적 표현
기록을 남기는 다큐멘터리즘으로 대전 재발견

  • 승인 2022-12-07 17:38
  • 신문게재 2022-12-08 11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06.Bae_sang-sun
대전에서 창작활동을 계기로 재조선 일본인을 주제로 작품활동 중인 배상순 작가. 한국과 일본의 실과 줄로 창작한 '샹들리에'는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배상순 작가 제공)
"패망 역사와 가족사가 얽혀서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얽힌 것을 반드시 풀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한 개인사를 인정해주고 자세히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작품 샹들리에를 구상했어요"

지난달 일본 나고야에서 쓰지 아츠시(84) 씨를 함께 인터뷰한 배상순 작가는 가족이 있는 교토까지 먼 길을 남겨두고도 기자와 만나 조선에서 귀환한 일본인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일본에 정착해 작가 생활을 한 지 20여년 됐다. 2015년 대전 테미예술창작센터가 주관한 지역리서치프로젝트에 참가해 소제동 골목을 걸을 때 갖게 된 궁금증을 쫓아 현재까지 재조선 일본인을 주제로 창작을 하고 있다. 배 작가는 "한국 국적으로 교토에서 20년 남짓 거주하는 동안 모국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 국내에서 활동을 찾던 중 대전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라며 "소제동 골목을 걷는데 제가 일본에서 거주하던 교토의 마을과 너무 유사했고,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면서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당시 지역리서치프로젝트는 대전의 근대유산을 조사하고 예술가의 눈으로 재해석해 표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백방으로 재조선 일본인을 찾은 끝에 대전태생의 오쿠보 고조(84) 씨와 미츠이 카요(83) 등 대전출신 일본인 7명을 비롯해 재조선 일본인 10여 명을 인터뷰했다.

10.작품사진
중앙로에서 바라본 대전역 모습의 사진 사이를 모형 화물열차가 통과하고 있다. 배상순 작가는 이를 통해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한일관계과 국민을 표현했다.  (사진=배상순 작가 제공)
배 작가는 "대전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조선출신 일본인은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스스로 말하지 않거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대상 없이 지내왔다"라며 "기록하고 기억을 남겨놓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져 다큐멘터리 차원의 기록하는 방식을 함께 사용해 인터뷰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 대전역 지도 위에 실과 줄을 가지고 이들의 여정을 표현한 작품과 대전출신 일본인 3명의 인터뷰 영상을 시작으로 2016년 두 번째 리서치프로젝트에서는 1900년대 초 대전역 사진을 이용해 귀환 화물열차를 타고 떠나는 이들을 표현했다. 끝없이 마주 보는 철길은 한일 양국이 하나가 될수도 그렇다고 멀어질 수도 없는 운명을 표현했다.



그에게도 재조선 일본인에 대한 조사·창작을 그만둘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때가 있었다. 배 작가는 "패망을 맞아 살던 집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와 식민지출신이라는 멸시도 겪은 세대인데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 이상으로 강점기 조선에게 닥쳤을 고난을 어느 정도 생각하는지 회의가 들어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라며 "한참을 고민할 때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고 중요한 연구'라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서야 재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8년 한국과 일본의 실과 줄을 풀어헤쳐 실타래 형태로 만들어 조명을 비추어야 복잡하게 얽혀있는 존재가 드러나는 작품을 창작하고 '샹들리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샹들리에를 전시한 기획전의 타이틀은 'Moon-bow(달무지개)'이었다. 달빛에 의해 비치는 무지개를 말하는 것으로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KG+SELECT 아트 페스티벌과 공익재단법인 한창유·출문화재단이 후원해 교토 화랑에서 전시회와 심포지엄을 가졌고,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했다.

배 작가는 "조명을 비추고 확대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를 표현한 것이고, 실타래를 꼭 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보다 존재를 인정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의미"라며 "한일관계와 역사에서 그들은 작은 존재일지 모르나, 소중한 증인이다"고 설명했다.
일본 나고야=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2.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3.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