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태어난 하기모토 형제가 제작한 대전 소제동 제53호 관사 모형. |
▲제53호 관사에 살았소
1945년 대전 소제동에 최대 70여 동의 철도종사를 위한 관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거주자 이름이 확인된 곳이 제53호 관사 하나다. 기관사 하기모토 신쿠마 씨가 아내와 2남 2녀와 함께 1945년 9월까지 이곳에 거주했는데, 하기모토 씨는 당시 가장 높은 등급의 아카츠키호 특급열차를 운전했다. 마당에는 작은 밭이 있어 토마토와 가지, 상추를 심었고, 담장 너머에서는 관사 구역 확장 위해 흙을 실어나르는 인부들로 북적였다. 마을에는 철도국이 운영하는 야구장이 있어 가장 활기 있는 장소였고, 우물에서는 여름이면 성환 참외를 식혀 먹곤 했다. 같은 해 9월 14일 이들 가족은 일본 귀환을 위해 대전역에서 부산행 화물차에 몸을 싣고 떠나면서 제53호 관사는 빈집으로 남았다.
하기모토 형제가 제작한 소묘와 대전역 지도 그리고 지점토로 만든 소제동 풍경. |
고토 가즈아키 일한시민네트워크 나고야 간사장은 중도일보와 만나 "하기모토 형제는 고향 대전에서 연구사들이 찾아온다고하니 고민한 끝에 이해하기 쉽도록 각자의 방식으로 모형과 지도준비해왔던 것이고, 한국과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중도일보는 지난 11월 일본 취재 때 하기모토 형제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수차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새롭게 발견되는 의미들
대전 중구 대흥동 뾰족집(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은 철도국장의 집으로만 알려졌으나, 와타나베 이와지(渡邊岩治·1875~1946)가 철도국 퇴임 후 지은 것이라는 게 근래에 확인됐다. 2020년 한국비평문학회에서 발표된 고윤수 대전시 학예연구사의 '일제하 대전 재조일본인들의 기록과 그 자리'에 따르면 와타나베는 부인과 함께 뾰족집에서 1남4녀를 키웠고, 1933년 대전고등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차녀 야스코가 병사하자 '헤이안'이라는 추모 가족문집을 발간했다. 와타나베의 증손녀는 2019년 8월 대전 뾰족집을 찾아 견학하고, 일본 후손들이 가지고 있던 기록과 사진을 대전시 측에 전달했다. 앞서 2016년 일한시민네트워크 나고야 회원들이 대전을 방문했을 때도 와타나베 가문의 또 다른 후손이 방문해 뾰족집이 철거 위기를 모면하고 지금은 등록문화재가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8월 '관정일본리뷰' 기고를 통해 뾰족집 증소년의 내한 소식을 소개하며 "증조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으나, 일본의 한국 침략과 통치에 가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전시 안준호·고윤수 학예연구사와 목원대 이상희 교수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대전 관련 자료를 찾고 있다. (사진=대전근대아카이브포럼 제공) |
▲대전출생 마지막 세대
2015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시작돼 지금은 대전문화재단이 이어가는 '지역리서치 프로젝트'가 대전의 근대역사를 연구하고 창작하는 무대가 되었다. 특히, 예술가들이 주체로 참여해 근대역사를 조사해 기록을 넘어 창작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또다른 대전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때 신미정 작가는 '신도(信道)'라는 작품을 통해 유성구 숯골에 정착한 수운교도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했고, 앞서 하기모토 형제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또 강점기 대전에 대한 조사·연구가 향토사 연구에 새로운 흐름으로 뿌리내렸다. 지난 10여 년간 소제동에 대한 조사와 활동사업을 주도한 이상희 목원대 교수를 비롯해 대전시 안준호·고윤수 학예연구사사 그리고 우송정보대 이토 마시히코 교수 등이 근대역사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리츠메이칸대학 평화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후지츄장유 쓰지 긴노스케가 당시 대전에 주둔 일본군 장교와 주고 받은 엽서형태의 1905년 대전역 사진을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다만, 대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일본인 마지막 세대가 감소하고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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