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건축학박사/대전시 문화재위원 |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되어있는 은행1구역의 범위는 남북으로는 중앙로부터 선화초등학교 앞 선화로까지, 동서로는 대전천서로부터 대종로까지이다. 이 지역은 2008년 정비사업 시행인가를 받은 이후 10년이 훨씬 넘는 지금까지도 사업이 진행되지 못해 중앙로와 대종로 대도로변에 위치한 점포를 제외하고 안쪽 지역은 영업을 포기한 점포들과 빈집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목척시장의 일부 가게와 카페, 주차장 등이 명맥을 유지한 채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은행1구역은 대전이 근대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 영조 때부터 '목척리(木尺里)'라고 불리던 자연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대전천의 상징 다리인 '목척교'와 '목척시장'의 명칭도 이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전천을 동서로 연결해주는 '목척교'는 1912년에 목재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름을 '대전교(大田橋)'라 한 것을 해방 이후 현재의 이름인 '목척교'로 부르고 있다.
'목척시장'은 1920년대를 전후하여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에는 일본인들의 주거지와 상점 거리가 형성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1941년 제작된 '환지지정기입재래가옥신구대조도(還地指定記入在來家屋新舊對照圖)'라는 지도가 있는데, 이 지도에는 은행동과 선화동, 대흥동 일원의 도로와 토지의 형태 그리고 당시 소유주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은행1구역을 찾아보니 소유주는 김갑순 등 일부 한국인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일본인들로 확인된다.
이 중 현재 남아 있는 일식건물 중 구조와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대전부윤(대전부의 기관장 : 대전은 1935년에 '읍(邑)'에서 '부(府)'로 승격) 관사'로 알려진 주택 부지의 소유자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름이 '坂上(사카가미 도미조)'였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으로 건너온 후 강경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강경면장과 강경읍장을 역임한 후 대전에서 중선일보 부사장, 대전쇄자주식회사 임원 등으로 활동하다 1942년에 사망한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토지소유주가 '대전부(府)'도 아니고 '부윤'도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지도에는 당시의 길과 시장(市場)과 공원(公園)의 위치 등도 표시되어 있어 당시 은행1구역의 도시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시장' 위치에는 현재 보행통로가 있는 몰(mall) 형태의 기다란 상점거리 건물이 있는데 지금은 시장기능은 완전히 없어지고 몇 개의 공간만 주거와 사무실 용도로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이 시장 공간을 중심으로 목척시장이 확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목척시장은 이곳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몇몇 점포만이 운영되고 있을 뿐 예전의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1구역은 해방 이후에도 대전의 중심지역이었다. 주거지와 상권이 발달된 지역으로 유동인구가 많았으며 시장, 병원, 한의원, 사진관, 은행, 여관, 목욕탕, 식당 등 생활과 밀접한 생활문화시설들이 풍부한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은행1구역의 정비사업 시행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다양한 형태로 은행1구역을 기록화하는 일련의 과정은 100곳이 넘는 대전의 개발예정지역 중 조사 대상을 선정하고 기록하는 방식 중 하나로 제시될 것이며, 향후 진행될 전시회는 은행1구역의 기억을 대전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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