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정신 줄 붙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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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정신 줄 붙잡기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2-12-05 08:37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 소장
양성광 소장
AI 머신들의 진격이 시작됐다. 스멀스멀 침투하는 머신들과 곳곳에서 격전을 벌이던 어르신들이 패퇴하여 20세기에 갇히는 일이 잦아졌다. 어릴 적 부모 세대들이 TV 리모컨을 마다하고 엉덩이 바닥 끌기 신공으로 이동해 채널을 돌리던 것을 보며 자란 이들이다. 어떻게 하든 머신과 친해 보려 키오스크 메뉴판과 씨름해보지만, 무심한 듯 서 있는 뒷줄 청년의 눈살에 결국 굴복하고 이 구역에서 철수하고 만다.

아직 마음만은 50대인 베이비부머들은 하필이면 은퇴 시기와 겹쳐 익숙하지 않은 머신들의 세상과 마주쳤다. 입구부터 혼을 쏙 빼어놓는 카페나 낯선 세간살이 머신들이 가득 찬 집안이나 이들에겐 설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직은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모셔야 할 부모님, 책임져야 할 자식들이 있는데, 머신의 변신에 따라 휘청거리는 세상이 숨통을 죄어온다.

지금 뒤처지면 영원히 자연인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초조함에 부단히 신문명을 익히고 있는 나도 떨어지는 감과 순발력, 침침해진 눈 때문에 점점 더 버거워진다. 더구나 젊을 때부터 잘 까먹던 뇌는 나이가 들면서 빨간불로 바뀌기 전 신호등처럼 바투 깜박거린다. 이제는 '외출할 때는 4가지(휴대폰, 자동차 키, 지갑, 마스크)를 챙겨야지'하는 방법으로 실수를 줄이려 애쓰지만, 귀가할 때는 나사가 풀려 가끔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린다.

얼마 전에는 온라인 뱅킹에 사용하는 OTP 카드를 갱신하러 은행에 들렀다가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주민등록증과 카드비로 만 원짜리를 내고 일이 끝나 주민증과 거스름돈 5,000원을 돌려받아 나가면서 지갑에 넣으려다가 지갑 안에 있는 5,000원짜리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내가 깜박하고 5,000원을 또 받았는가보다라고 직원에게 호기롭게 얘기했는데, 앗! 나의 실수, 원래 내 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 직업이 은행 창구직원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평생을 해오던 업무는 신기하게도 아직 펑크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 적성인지는 몰라도 평생 해오던 일이 어느새 내 천직이 됐나 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 현우는 재벌가 머슴으로 회장 일가의 뒤치다꺼리 하다가 비자금 문제로 살해당한 뒤 그 집의 막내 손자로 환생해 전생의 복수를 계획한다. 허황한 판타지이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전생을 기억해 미래를 아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초기의 아마존에 투자해 큰돈을 버는 등 대리 만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내 어릴 적 장래 희망이 무엇이었더라? 혈기 왕성할 때는 첩보원이나 건축가, 때론 제인 구달과 같은 동물행동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삶을 한 순배 살고 나서 복기해보니 이들을 택했으면 잘해냈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직업은 모두 관찰력이 생명인데, 나는 영화 중간에 주인공 여자가 헤어스타일만 바꾸고 나와도 헷갈리는 안면인식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의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어떤 직업을 택할까? 그래도 선택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예전에는 '사'자 달린 직업이면 최고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은 직업이 다양해지고 워라밸이 중요한 세상이 됐다. 소위 잘나가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하는 것, 3박자 모두가 맞는 직업을 택하기는 어렵다. 아직 자아를 찾지 못한 학생과 초보 부모에게는 더욱 그렇다.

3가지를 모두 맞추기는 어렵지만, 1가지를 포기하면 그래도 선택지가 좁아진다. 소위 잘나가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잘하는 것은 타고난다. 좋아하는 것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자라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나는 아이의 소질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해 그쪽으로 관심을 돌리려 최선을 다할 것 같다. 잘하는 것을 좋아해 직업이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 분야의 최고가 돼서 소위 잘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잘나가는 것만 쫓다가 잘하지도, 또는 잘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직업을 가진 인생은 불행할 것이다.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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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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