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불편하고 눈이 어두워져 길을 겨우 찾을 정도여서 열차를 타거나 내리는데 보호자가 필요했다. 역에 갔더니 교통약자 배려서비스가 있었다. 이런 편리한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걸 신청했더니 휠체어로 출발역에서 열차까지 태워주고 또 도착역까지 연계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안심이 안 되어 내 인맥으로 동해역 근처에 사는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마침 일요일 당번 직원이 있다고 했다. 그 직원에게 택시 타는 것만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해 주겠다고 했다. 열차가 도착할 즈음에 호출택시를 불렀더니 역 앞에서 대기해 주었다. 큰 불편함 없이 무사하게 택시를 타고 시골집에 도착했는데 어머니도 만족해하셨다.
철도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 42년이 되었다. 은퇴하고도 철도 언저리에서 기대어 살고 있다. 철도경력기술자를 컨설팅 해 희망하는 업체에 취업을 매칭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 대략 석 달이 되었는데 요즘 전국에서 연락이 온다. 철도라는 매개체는 전국을 하나로 연결해 쉽게 통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필자가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시골까지 동행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사람과 시스템을 안다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철도 퇴직자나 퇴직예정자와 관계가 원만해야 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내게 안성맞춤이다. 전국 어느 역에 가도 익숙하고 한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통한다.
90년대 중반쯤 유럽 여행을 처음 갔었다. 가장 불편한 게 언어 소통이 안 되는 것이고 그다음이 음식이었다. 식당에 가면 뭘 주문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화장실 찾는 것도 어려웠다. 공중화장실이 유료로 운영하는 것도 낯설었다. 알지 못하는 문화의 차이가 불편함으로 느껴졌다. 가져간 김치 때문에 호텔에서 혼이 났는가 하면 식당 음식이 안 맞아 햄버거만 찾았던 게 기억난다. 지난주에 제주도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불편한 게 하나도 없었다. 지리도 찾기 쉽고 음식도 잘 맞았다. 모든 것이 잘 아는 덕분이었다. 렌터카를 운전해 어딜 가도 불편함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익숙해 있는 것 때문이었다.
며칠 전 세계적 갑부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가 다녀갔다. 언론에 난 기사를 보니 하룻밤을 묵기 위해 호텔 화장실도 다 고치고 운동기구며 가전제품도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 또 호텔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일절 먹지 않고 전용 세프가 가져온 음식을 따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물론 200개의 객실을 사용한 수행원은 호텔에서 만든 할랄음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고 나니 며칠 전에 만난 국제적 여행가 한 분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세계는 이슬람 종교를 가진 인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화장실이며 할랄음식점, 기도실이 꼭 필요한데 우리나라 철도역 어느 한 군데도 없다고 했다.
익숙함이 최고의 서비스다. 자기 나라의 문화와 습관을 여행지에서 불편함 없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K팝, 영화, 드라마, 가전, 자동차 등으로 날로 인기가 늘어나는 대한민국인데 좁은 땅 한국은 넓은 세상에서 소외당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국제적 에티켓에 맞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가 몸담았던 철도에서 하는 교통약자 배려서비스는 노약자에게 아주 만족스런 최상의 서비스이다. 이 처럼 할랄문화도 빨리 받아들여 이슬람식 화장실도 기도실도 설치되어 이슬람 문화의 세계인들에게도 대한민국 철도가 익숙하고 만족스러운 세계적 철도서비스가 되길 기대해 본다.
반극동 철도전문칼럼니스트·철도전문인재뱅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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