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주례가 울린 신랑, 그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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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주례가 울린 신랑, 그 눈물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2-11-2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내 나이에 제자 7쌍 주례를 서 주었는데 첫 번째 주례 얘기다.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보니 고3 때 담임한 제자가 2달 후에 장가를 간다고 주례를 서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선 정혼을 축하하고 주례는 거절했다. 주례를 서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으로 선뜻 응낙 못 하겠다는 얘기와 주례는 아무나 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로 거절했다. 명분 없는 거절로 오해받을까 봐 주례의 자격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주례는 인품과 덕망을 갖춘 사람으로 사회적 지위도 있고 존경을 받을만한 분이 서야 하는데 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니 다른 훌륭한 분을 주례로 모시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전화했던 제자와 예비 신부의 예고 없는 급습 방문에 사양 못하고 주례를 서 주기로 응낙을 했다. 주례 응낙을 했어도 첫 주례인데다 내 신장이 150㎝ 밖에 안 되는 단신이어서 주례 석상에 올라가 웃음거리가 될까 봐 고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주례를 거절할 때 말은 못 했어도 이것이 주 거절 사유이기도 했다. 기왕 맡은 주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주례사를 작성해서 한 달 동안 연습으로 원고를 다 외웠다. 조바심으로 예식 날짜 1주일 전에 예식장을 방문했다. 주례사 할 단상을 답사차 갔는데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선 키로는 앞의 교탁에 가리어 주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예식장 운영자에게 단신 주례들이 쓰는 발돋움 높임대를 무려 두 개나 높여 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초조 속의 날짜가 임박했다. 주례 부탁을 받은 후로는 빠지지 않고 다니던 초상집도 못 가고 부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전달했다. 결혼 하루 전날은 신랑 신부를 위하는 마음으로 목욕재계하고 마지막으로 주례사를 시연해 보았다, 막히는 데가 없어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결혼 당일이 되었다. 신랑 측에서 승용차를 가지고 온다기에 극구 사양하여 열차로 여유 있게 서울 소재 예식장에 도착했다.



사회자의 개식 선언으로 혼례식이 시작됐다. 주례사를 할 순서에 따라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주례사를 했다.

「새해를 첫 출발하는 의미 깊은 1월, 그 중에도 오늘 같은 길일을 택하여 신랑 배** 군과 신부 이** 양의 두 사람의 인생이 하나로 시작되는 성스런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비롯되는 이 자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왕림해 주신 친지 친척 그리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양가를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가 오늘 주례의 영광을 안고 이 단상에 오르게 된 것은 신랑 배 군의 고3 때 담임을 한 사제지간의 인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신랑 신부 두 사람은 남다른 성실성과 의지로 살아온 분들이어서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하늘이 맺어준 천정배필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새로운 인생을 첫 출발하는 신랑 신부에게 인생 선배로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신랑 신부는 항상 오늘 같은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 달라는 것입니다. 지어미가 지아비를 항상 왕처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지어미는 여왕의 대접을 받게 될 것이고, 지아비가 지어미를 하녀처럼 대하면, 지아비는 그 순간부터 종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구태여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

둘째, 신랑 신부는 바느질할 때 쓰는 가위와 같은 삶의 지혜를 가져주기 바랍니다. 가위는 좌우의 날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그 사이에 종이나 천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좌우의 날이 동시에 협력하여 다른 물질을 잘라냅니다. 이와 같이 공동의 목적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뛰어난 지혜를 보여 주는 삶을 영위해 주기 바랍니다.

셋째, 신랑 신부는 앞으로의 생활에 있어 상대방의 웬만한 결점에는 한 눈을 감고 사는 지혜를 가져 주기 바랍니다.

영국의 성직자 토머스 플러는 말하기를 '결혼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는 한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열심히 관찰하여 자기가 원하는 일생의 반려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서로의 선택에 의해서 결혼이 성립되면 상대방의 장점에만 눈을 뜨고, 단점에는 한 쪽 눈을 감고 사는 의젓함이 있어야 합니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결혼 전에 발견 못했던 상대방의 결점 같은 것이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서로가 나무란다면 부부로서의 평탄한 생활이 영위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지간한 일에는 한 쪽 눈을 감고 사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꾸중이나 단점을 지적하는 열 번의 충고보다는 한 번의 칭찬이 위력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애정을 공급하고 삶의 활력소를 불어 넣는 파이프가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앞날에 많은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서로의 소망이 충만한 사랑으로 영그는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주례사에 갈음합니다. 1996. 1. 14. 주례 남상선 」

이상한 것은 시끌벅적 소란하던 예식장 안이 주례사 하는 동안 너무나 조용했다. 식이 끝나고 후문(後聞)으로 들리는 얘기가 하객들이 주례사 내용에 빠져 경청하느라 조용했다는 얘기였다. 이 한 마디에 긴장감으로 고조됐던 마음이 확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식순에 의해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순서가 되었다. 신부 측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돌아서서 신랑 측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게 했다. 신랑 측 혼주 석에는 신랑의 큰형님과 형수님이 앉아 있다. 조실부모로 형님 내외분이 신랑을 키우다시피 뒷바라지한 가정이었다.

「여기 혼주석에 앉아계신 분들은 신랑의 큰형님, 형수 되는 분이십니다. 이 두 분은 신랑의 조실부모로 신랑의 부모님 역할과 뒷바라지를 다 해 주신 분들이십니다. 큰형님은 신랑의 형님으로서, 아버지로서, 형수님은 형수로서, 어머니로서, 1인 2역을 다해 주신 훌륭하고 장하신 분들이십니다. 신랑 신부 큰절로써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

주례의 인사소개가 끝나자 신랑의 붉어졌던 눈시울이 인내심으로 아껴두었던 액체를 소리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소중한 눈물 방울인 것 같았다. 예상 못했던 신랑의 모습을 보고 주례는 당황했다. 순간 주례도 무슨 생각이 뒤얽혔는지 할 말을 잃었다.

평범한 내용의 인사소개였으면 좋았으련만 뭐 그리 잘 해보려고 그랬는지 하지 말았어야 할 말까지 해서 신랑을 울린 것이다. 마냥 기쁨과 웃음으로 수놓아야 할 자리를 순간이지만 눈물로 애잔한 분위기를 만들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랑의 성정으로 보아 그 눈물은 음수사원(飮水思源)하는 눈물임에 틀림없었다.

아니, 보은과 사랑을 다짐하는 눈물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보은과 사랑을 다짐하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의 그 눈물은 진주이슬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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