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뉴스디지털부 기자 |
#2.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곳곳이 단풍으로 물든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 엽록소가 파괴되는 과정으로 잎사귀의 수분이 빠지고 시들면서 나타나는 단풍은 우리나라 9월 하순부터 11월 상순까지 전국에 거쳐 그 풍광을 뽐낸다. 지난달 21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28일 지리산, 31일 속리산과 한라산 단풍이 절정을 이뤘고, 11월로 접어들어서는 2일 계룡산과 4일 무등산, 5일 내장산을 끝으로 2022년 단풍 쇼가 막을 내렸다. 단풍이 든 나뭇잎들은 낙엽이 된다. 나뭇잎과 가지 사이 '떨켜(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 세포층)' 현상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할 때의 전달 신호물질인 '앱시스산'이 작용하면서 식물의 겨울나기가 시작된다.
요안 부르주아의 행위예술은 얼마 전 유튜브 영상으로 처음 봤다. 아주 느린 속도로 계단 두어 칸을 오르다가 갑자기 몸을 내던지는데, 계단 밑에 트램펄린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떨어졌다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그의 춤은 '내려놓음' 자체였다.
단풍과 낙엽이 주는 단상도 인상적이다. 봄과 여름 한껏 펼쳤던 나뭇잎들은 겨울을 준비하면서 단 한 장도 남김없이 떨군다. 우리에겐 가을을 상징하는 낭만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지만, 그들로선 혹독한 겨울한파를 견디기 위한 최후의 방편이다. 이듬해 봄 화려하게 부활하기 위한 '내려놓음'이다.
요안의 행위예술과 낙엽의 겨울나기에서 내려놓음과 상통하는 '방하착(防下着)과 착득거(着得去)'를 빗대어본다. 미국의 극작가 메릴 미도우가 공저한 '하워드의 선물'에서 그는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했다. '채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비움'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인데, 불교사상이자 동양적 사고와도 매우 긴밀히 닿아 있다. 2022년을 마무리하는 즈음, 올 한 해 나를 살찌운 채움은 무엇이고, 나의 가치를 빛나게 한 비움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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