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미룸갤러리 대표) |
개인적으로 SF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수장고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공상과학 영화 이야기냐고 타박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SF영화까지 끌고 나왔으니 수습을 해야 할 것 같다. 공상과학영화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주제가 많다. 아마 열 편의 영화 중 여덟 편은 부정적인 시선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영화까지 모셔와 대전의 수장고(미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소한 청주 수준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준점이 없어 청주를 데리고 왔지만, 청주 역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시나 관련된(문화예술) 사람들이 그냥 손 놓고 있지 않았다. 문체부가 하라는 대로 해주는 대로 보고만 있지 않고 관심을 두고 참견하였다. 완성 전에 부족해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이미 완성된 곳에 다시 무엇을 추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이 들기에 미리부터 관심을 두고 진행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대전시는 지금 수장고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소한 국립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수장고를 짓는다면 관련자들과 여러 방법을 통해 먼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형식적이거나 보여주기식의 소통이 아닌 대전에 들어올 수장고를 창고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절차가 필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수장고가 창고로 끝이 난다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대전에 그림 창고가 왜 필요하겠는가. 문화예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수장고를 만들어 지역 문화예술에 인프라를 세우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담론이 담겨있다면 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가 어떤 모습인지 기본 소프트웨어의 설계 정도는 지금쯤 만들어졌어야 했지 않았을까. 대전시가 어떤 의견 절차도 없이 수장고를 만들면 그 책임은 현 지방정부가 져야 한다. 더불어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하는 분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굳이 구체적으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미술관 앞에 국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은 서울과 과천이다. 지방에 살다 보니 다른 예술 공간은 둘째 치고 부럽다고 고백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가보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올 초부터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컬렉션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게으른 탓에 온라인 신청을 할 때마다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겨우 한 번 기회를 얻어 만사 밀어두고 달려가서 본 것이 전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는 충북 청주에 이미 지어졌다. 전시관이 있는 수장고여서 시간이 나면 종종 구경 가는 편이다.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대전에 수장고가 지어지면 이 정도의 인프라를 가질 수 있을까' 혹여 청주의 수장고 수준보다 떨어지면, 수장고 이외의 상설 전시관이나 편의 시설도 없으면. 우리 동네에 지어진다는 수장고에 이런저런 노파심에 앞서나간다. 유토피아적인 상상을 하고 싶은데, 자꾸 디스토피아 적인 염려가 떠오른다.
청주는 상설 전시관을 만들고 편의 시설을 수장고 옆에 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들었다. 만약 대전에 국립현대 미술관 수장고를 짓는데 이런 것 없이 말 그대로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전락을 한다면 끔찍하다. 이런 우려를 잠재울 방법은 대전시가 공청회를 열고 어떤 방식의 수장고를 만들지 문화예술을 하는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미술을 하는 분들과도 허심탄회하게 열린 자리가 필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공간은 대전시 문화체육관광부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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