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단풍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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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단풍에게 묻다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2-11-14 11:09
  • 신문게재 2022-11-15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재석 소설가
전북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에 단풍나들이를 갔다. 계곡물이 흐르는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애기단풍나무가 크기, 모양, 주변 자연과의 조화까지, 3박자를 두루 갖추면서 가히 절세미인임을 뽐낸다. 산책길을 걷고 있으면 붉고 노란 단풍잎에 감탄하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불타오르듯 죽음을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젊은 날,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일본인들은 유독 벚꽃을 좋아한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한국의 단풍놀이처럼 하나미(花見)라고 부르는 벚꽃놀이를 즐긴다. 벚꽃나무는 4월 한철 하얀 꽃이 피었다가 짧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꽃잎이 진다. 당시 나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을 지려 밟으며 꽃길을 걸었었다. 낙하하는 벚꽃의 갈무리를 가늠해보았다.

'짧고 굵게,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벚꽃은 명령에 복종하며 스스로, 단숨에 목숨을 끊는 일본인의 할복문화와 이미지가 겹쳐있다. 어쩌면 생은 짧고, 아름다움도 한순간이며 죽음이란 생이 의미를 잃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었다.



그와는 다른 의미로 한국인은 정말 단풍놀이를 좋아한다. 코로나19에서 좀 벗어나자 올해도 여지없이 단풍나들이로 전국이 들썩들썩 거린다. 따지고 보면 잎이 그 생명을 다하고 떨어지려는 찰나인데 왜 이리 난리가 나는 걸까? 나는 한국인에게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끝장을 보는 거야!' 하는 기죽지 않는 심성이 있지 않나 싶다. 단풍처럼 마지막까지 온 몸을 활활 태우며 지고 싶은 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사약문화가 있다. 임금의 지엄한 명 앞에 사약을 받아든 선비들, 그들이 겪었던 생의 지난함과 굴하지 않았던 선비정신을 떠올려 본다. 그 독약을 들이키며 온 몸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단풍처럼….

나는 애기단풍잎이 무성하게 그늘져, 단풍잎 그림자가 쫙 갈린 산책로를 걸었다. 그림자는 단풍의 아름다운 색을 담고 있지 않다. 단지 검은색일 뿐이다. 사실 우리 삶의 본질적인 빛깔도 검은 빛에 가깝다. 어둠이 이불을 덮어주면 만물은 빛을 잠재운다. 낮 동안 찬란하게 빛났던 단풍잎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낮이 더 찬란했던 이유도 죽음이란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싱싱한 초록잎사귀를 자랑하던 나무를 떠올렸다. 나무는 초록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여름철, 산을 온통 초록으로 두른 일치단결된 단색 열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초록은 위장색이고 연막탄과 같다. 광합성 작용을 통해 엽록소를 만드는 나뭇잎에서 초록은 단지 흡수가 되지 않는 색일 뿐이다. 반사된 색을 우리는 본다. 그들은 같이 살아가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할까봐 붉고 노란 정열의 마음을 흡수하여 감춘다.

늦가을이 되면 잎은 곡기를 끊고, 자신을 떨어뜨릴 준비를 한다. 초록을 반사했던 엽록소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그제야, 거부했지만 그 때문에 조화와 평화를 가져다주었던 초록을 잎은 받아들인다. 대신 붉고 노란, 각자가 지닌 정열의 색을 오히려 토해내며 생명을 다 태워버릴 듯이 타오른다. 화양연화와 같이 품었던 그 정열의 마음은 다시 태어날 잎의 자양분이 될 터이다. 돌이켜 보면 화려한 단풍은 하나임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이며 조화와 평화를 사랑했다는 것을….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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