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석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
그의 드로잉 쇼에서 놀라운 점은 이렇게 단박에 그려낸 그림이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아주 섬세한 묘사는 기본이며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건물과 복잡한 기계들의 투시와 균형은 딱 맞아떨어진다. 캔버스 가득 들어찬 모든 사람의 행동과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구도와 비율 또한 정확하다. 적게는 두 시간 많게는 일고여덟 시간에 걸쳐 쭉쭉 그려내는 작업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에 많은 기업이 드로잉 쇼를 광고로 활용하였고, 굵직한 이벤트에서도 김정기 작가를 초청하여 대중 앞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곤 했다.
2022년 10월 5일 SNS를 통해 김정기 작가의 부고가 전해졌다. 한창 해외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47세의 천재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여러 드로잉 작가들도 애도의 글과 함께 그를 기리는 드로잉을 SNS에 게시하며 아쉬움과 슬픔을 전했다.
이 와중에, 10월 7일 한 트위터 사용자의 행동이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BG_5you'라는 아이디 사용자가 그림을 그려주는 AI에게 김정기 작가의 작품을 학습시켜 '김정기풍 이미지'를 양산해 낸 뒤, 그 중 몇 개를 자산의 계정에 올린 것이다. 그림 속 사람 대부분 얼굴이 뭉그러지고 그림의 배경 또한 뭉뚱그려 처리된 부분이 꽤 많지만, 언뜻 보기에는 고인의 그림이라 생각할 정도로 그림체가 상당히 유사하다. 이 이미지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자, 많은 사람이 해당 트위터 계정에 찾아가 덧글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계정 주인은 '고인이 된 작가의 작품을 계속 만나는 것도 추모의 한 방법'이라는 이유를 대며 응수하고 있다.
김정기 작가는 6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천재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린 시절부터 이미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 세계적인 명성을 뒷받침하는 실력을 연마했다. 그런데, 불세출의 대가가 지닌 역량이 AI에게 복제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 반나절이었다.
지금까지 '제작과 창조'라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 아니어도 '제작과 창조'라는 행위를 하는 무언가가 우리 곁에 있다. 수많은 애니메이션 그림을 학습한 AI는 입력된 키워드에 따라 몇 초 만에 에니메이션풍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직은 손가락과 발가락에 대한 묘사가 서툴고 표정도 어색한 경우가 많지만, 사람의 리터치(약간의 수정)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실제 서비스에 투입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미 제작과 창조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AI 이미지 제작 서비스를 통해 막 세상을 떠난 작가와 화풍이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이미지를 SNS에 올렸다'라고 하면 저작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어떤 주체가 지게 될까? AI서비스 제작자? AI에 이미지 학습을 시킨 사용자? 이미지 학습을 통해 이미지를 양산하는 AI? 키워드를 입력해 이미지 제작을 지시한 사용자? 아니면 이미지를 활용한 사용자? 이제 법과 제도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제작과 창조'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원은석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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