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氣(기운 기), 過(지날 과/ 지나치다), 必(반드시 필), 禍(재화 화)
출 처 : 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 한국의 인간상(韓國의 人間象)
비 유 :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을 장려하거나 권장할 때
조광조(趙光祖/ 1482 ~ 1519)와 남곤(南袞/ 1471 ~ 1527)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개혁세력(新進士類)과 보수세력(勳舊派)이다.
그들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부터 십여 년의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총명과 슬기는 스승을 늘 흐뭇하게 하였다. 그들이 과거를 눈앞에 두고 학문에 열중하고 있던 어느 날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으로 가는 길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지나가고 있었다. 조광조는 그 처녀를 보는 순간 공연히 가슴이 뛰고 얼굴이 상기 되었다. 마음은 괜히 부끄러우면서도 시선은 줄곧 처녀들에게 쏠려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앞으로 해야 될 공부가 많고, 어머니 말씀대로 나라의 동량이 되어야 할 텐데…….'
조광조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는 안 되지, 장차 어쩌려고…….'
조광조가 마음고생으로 뒤쳐져 걷는 동안 남곤은 저만치 앞서서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조광조는 걸음을 빨리 하여 남곤을 따라갔다.
'역시 남곤은 나보다 낫구나, 난 아직도 수양(修養)이 부족한 거야.'
집으로 돌아온 조광조는 어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였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난 어머니가 말하였다.
"애야,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네 나이 때에 처녀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까 그건 잘못이 아니다. 네 또래의 사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생각이란다."
"어머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간 남곤은 처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꼿꼿이 걸어갔습니다." "음, 그랬어?"
"예, 어머니, 남곤은 확실히 저와는 다릅니다."
어머니는 한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 밤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사를 가야겠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이사라니요?"
"아무 말 말고 조용히 이삿짐을 싸도록 해라."
조광조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결정에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에 따라 짐을 꾸려 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 이렇게 야반도주(夜半逃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애야, 사람은 자기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예쁜 처녀가 옆을 지나가면 너 같은 총각이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남곤은 자기감정을 숨기고 목석처럼 행동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얼마나 차디찬 사람인지 알 수 있겠다. 사람은 따뜻함과 너그러움이 있어야 되는 것이란다. 엄격함고 꼿꼿함만 가지고는 너그럽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단다. 엄히 다스려야 할 때도 있지만, 너그러이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이란다. 앞으로 남곤은 여러 사람을 피 흘리게 할 것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참으로 냉혹한 사람이야."
조광조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훗날 남곤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 실제로 칼날처럼 냉엄한 정치를 했다. 그는 훈구파(勳舊派)의 선봉에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집권자 조광조 등 신진사류(新進士類)를 숙청한 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조광조는 남곤을 비롯한 보수파들이 국가의 개혁을 막고 있다고 주상에게 공공연히 주청하고 나섰다.
이때 남곤일파는 더 이상 조광조에게 밀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목자(이씨왕조)는 이미 쇠퇴하고, 주초(走+肖=趙씨)가 천명을 받는다"로 문구로 바꾸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허황한 사건을 만들어 썼다. 그래서 조광조는 하루아침에 역신으로 몰려 유배 길에 올랐다가 곧 바로 사사(賜死)되었다.
남곤은 말년에 선비로서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초고(草稿)를 모두 불살랐는가하면, 자녀들에게는 자신이 죽은 뒤 비단으로 염습(殮襲)하지 말 것과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사람은 인간미(人間味)가 있어야 한다. 너무 맑고 아집(我執)에 사로잡히면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라 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너무 살피는 행동이 없었는가? 반성해본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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